“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시점이 앞당겨졌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이상 정부가 아닌 민간이 핵융합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뉴퓨전’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영국(사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최근 대전 본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민·관 합작으로 200~300MW(메가와트) 규모의 소형 핵융합로를 지어 토종 핵융합 기업 성장의 마중물을 마련하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미국 스페이스X 같은 민간 기업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처럼 핵융합도 민간 주도로 기술을 혁신하는 뉴퓨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5년간 국제핵융실험로(ITER)에서 근무하면서 역동적인 시대 변화를 목격했다”며 “이제 화두는 ‘연속운전’이나 ‘점화’ 같은 원천기술 성과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이 기술들을 응용해 2050년까지 실제로 핵융합 발전을 상용화하고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주요국들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내걸면서 원자력·신재생에 이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핵융합도 상용화 시점이 ‘코앞’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오 원장은 “기존에는 ITER가 (2030년대에) 완성돼 상용화 가능성을 증명하면 각국이 그 데이터를 토대로 실증로(시험용 발전소)와 이후 상용 발전소까지 짓는다는 계획이었다”며 “이렇게 하면 실패 위험이 적어 안전하지만 상용화 시점이 (2050년 이후로) 늦춰진다. 대신 500MW급의 ITER보다 작더라도 빨리 실제 발전소를 지어 전기 생산 능력을 확인해보자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특히 원자력 기술의 패러다임이 대형 원전에서 소형원자로(SMR)로 넘어갔듯 핵융합도 시설을 소형화하면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아직 기술력이 부족한 민간이 참여해 산업 생태계도 키울 수 있다. 영국은 이미 ‘스텝(STEP)’이라는 핵융합로를 개발 중이고 미국은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CFS), 헬리온 등관련 스타트업 40여개가 등장하고 SMR처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와 협력하며 민간 생태계를 키우는 중이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술 개발에 조(兆) 단위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은 당초 핵융합연 주도로 ITER 이후 2030년대 한국형핵융합실증로(K-DEMO) 구축을 준비해왔지만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올 7월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마련하는 등 역시 전략 선회를 추진 중이다. 오 원장은 이에 맞춰 연구원 400명 규모의 연구개발(R&D)에서 민간 육성 지원으로 기관 역할을 확대할 방침이다.
핵심 인프라는 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다.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환경을 세계 최장 시간 유지할 수 있는 연속운전 장치다. 연속운전은 핵융합 발전의 선결조건인 만큼 향후 기업들에게도 핵심 기술이 될 전망이다. 오 원장은 “민간 육성을 위해 KSTAR를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며 “기술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관 논의 창구인 ‘핵융합혁신연합’, 관련 정책 연구를 전담할 싱크탱크 ‘핵융합정책센터’도 조만간 출범한다.
그는 또 “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개최한 ‘세계핵융합에너지그룹 창립 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해외 핵융합 당국들과 ITER의 민간 개방 등을 논의해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오 원장은 원자력과 묶여있는 기존 핵융합 규제를 분리·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가령 핵융합로를 설계할 때 원전에만 들어가는 고압용기 관련 성능 기준이 덩달아 적용돼 기술 개발 시 번거로움이 있다. 그는 “영국이 발빠르게 핵융합 규제를 원자력 규제에서 분리했다”며 “미국 기업들이 영국으로 옮겨가자 미국도 뒤따라 규제를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