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2일부터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할 때 받을 수 있는 디딤돌대출 한도가 수천만 원 줄어든다. 디딤돌대출 규모 급증으로 인해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다만 실수요자의 반발을 고려해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80%로 유지한다.
국토교통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의 ‘디딤돌대출 맞춤형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가 지난달 사전 예고 없이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를 시행하려다 거센 반발이 일자 개선안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수도권 소재 아파트를 대상으로 디딤돌대출의 ‘방 공제’ 면제와 잔금대출(후취담보를 조건으로 한 미등기 아파트에 대한 담보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유예 기간을 거쳐 12월 2일 신규 대출 신청분부터 적용된다. 방 공제(서울 5500만 원, 경기 4800만 원)가 시행되면 수도권 아파트의 디딤돌대출 가능액은 5000만 원가량 줄어들게 된다.
다만 이번 조치는 수도권 아파트에만 적용된다. 지방 주택과 빌라·오피스텔 같은 비(非)아파트는 제외된다. 연 소득 4000만 원 이하 가구가 3억 원 이하 저가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와 디딤돌대출 중 하나인 신생아특례대출도 이번 규제에서 배제된다. 당초 70%로 줄이려 했던 생애 최초 구입자 LTV는 80%로 유지된다.
오히려 신생아특례대출의 소득 요건은 현재 부부 합산 연 소득 1억 3000만 원 이하에서 다음 달 2일부터 2억 원으로 상향된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디딤돌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디딤돌대출 규제 강도를 애초 계획보다 완화한 것은 대출 증가세가 진정되고 있는 데다 서민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대출 문턱이 높아진 만큼 이번 조치로 수도권 내에서도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의 매수세는 꺾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2월 2일 신규 신청분부터 디딤돌대출의 규제가 강화된다. 먼저 주택금융공사 보증에 가입하면 임차인을 위한 최우선 변제금을 뜻하는 ‘방공제’를 면제해줬으나 이를 중단한다. 지역별로 정해진 방공제 금액을 대출금에서 제외한 후 대출 한도를 책정하는 만큼 빌릴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것이다. 방공제 금액은 서울 5500만 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4800만 원, 광역시 2800만 원이다. 예로 과밀억제권역인 경기 고양시에서 A 씨가 디딤돌대출(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로 5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기존에는 3억 5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3억 200만 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울 노원구에서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하는 B 씨의 대출 가능 금액도 3억 5000만 원에서 2억 9500만 원으로 낮아진다.
아울러 정부는 디딤돌대출에서 ‘후취담보’를 조건으로 미등기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받는 것도 중단한다. 국토부는 시중은행 등에서 다른 대출을 받고 나서 등기를 완료한 후 기금 대출로 전환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규제 강화는 수도권 소재 아파트에 한해 적용한다. 김헌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현재 디딤돌대출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비중이 각각 50%”라며 “수도권 아파트 대상 방공제 등을 시행하면 내년에는 3조 원, 2026년에는 5조 원 정도 대출 집행액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책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은 디딤돌대출 규모가 늘면서 가계부채가 커지고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올해 1~10월 디딤돌대출 집행 금액은 25조 원이며 연간으로는 30조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약 30% 늘어난 규모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디딤돌대출 방공제 면제 제외뿐 아니라 생애최초주택마련 LTV도 80%에서 70%로 낮추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대출 조이기에 수요자들의 혼선이 이어지자 이를 잠정 유예했고 결국 이번 발표에서 생애최초 LTV 강화를 제외했다. 부동산 업계의 한 전문가는 “서울 집값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견인하고 있는데 집값 상승세를 누르기 위해 서민들을 위한 대출을 억제하는 건 명분이 없다는 비판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 증가세가 완만해지고 있는 것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8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월 대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8조 9115억 원에 달했지만 9월 5조 9148억 원, 지난달에는 1조 923억 원으로 증가 폭이 감소했다.
부동산 업계는 이번 대출 규제 영향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은 지역에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신혼가구가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있는 최대 주택가액인 6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약 47%다. 서울은 13%로 집계됐다. 25개 자치구 중에서는 도봉구의 비중이 53%로 가장 높고 이어 노원구(42%), 금천구(38%), 강북구(25%) 등의 순이다. 반면 강남 3구는 3% 미만으로 집계됐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경기에서는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외곽 아파트 가격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