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프로 싼 가격에 이사회도 없이”…고려아연, 한화 지분 매각 왜 급했나 [황정원의 Why Signal]

2022년 주당 2만8850원에 7.25%
'30일 평균' 2만7950원 한화에너지에
마련한 1500억 자사주 매입에 쓸까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율 22.16%로
고려아연도 돕고 승계 강화 '일거양득'
MBK와의 분쟁에 김동관 카드 나올까

30일 경영권 방어 대책 논의를 위해 긴급이사회를 연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 로비 모습. 연합뉴스

고려아연(010130)이 보유한 (주)한화(000880) 지분 7.25%(543만6380주)를 한화에너지가 인수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겉보기엔 고려아연의 자금 마련을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한화 역시 3형제의 지분율을 높이며 승계 작업에 탄력을 줄 수 있어 ‘윈윈 효과’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후속으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어떤 지원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와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11월 주식매매계약(SPA)에 따른 사업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갖고 있던 (주)한화 지분을 놓아도 양측의 전략적 협력은 계속 유지된다. 한화는 고려아연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는 만큼 시장에 내놓기 보다 한화에너지로 넘긴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에너지가 가져올 고려아연의 (주)한화 지분 7.25% 인수 가격은 주당 2만7950원이다. 거래가격은 최근 30일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됐다. 2022년 고려아연이 주식을 맞교환 했을 당시 가격은 주당 2만8850원이다. 취득가 보다 약 3% 손해를 보면서 처분하는 셈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이번 결정을 위해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아 눈길을 끈다. 의무사항은 아니어도 1520억 원 가치의 주식을 매도하면서 어떠한 거버넌스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는 보유 지분 매각과 관련해 정해진 바가 없다. 상법 제393조 1항에는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판례를 따랐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최근 사업연도말 자산총액 5% 정도의 자산을 '중요한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12조460억 원이다. 즉, 이번 매각을 통해 들어올 1520억 원은 1%대에 그쳐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한화 입장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김동관·동원·동선)이 그룹 지주회사인 (주)한화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됐다. 한화에너지는 (주)한화의 2대 주주로 오너 3세인 3형제가 100%(김동관 50%, 김동원·김동선 각 25%) 지배하고 있는 회사다. 지난 7월 주당 3만원에 8% 확보를 목표로 공개매수를 진행했지만 5.2% 매수에 그쳤는데, 이번에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지분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번 지분 매입을 통해 한화에너지의 (주)한화 지분율은 14.90%에서 22.16%로 높아진다. 한화그룹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주)한화 지분율은 55.83%가 된다.


금융감독원이 2조5000억 원 규모의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재추진과 철회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당초 한화가 67만원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으로 예측됐다. 최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이후 3~4차례 만난 점을 고려하면 한화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올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이번에 마련한 자금으로 상환 대신 자사주 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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