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사임을 요구할 경우 응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 가능성을 일찌감치 열어둔 가운데,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부당한 압력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7일(현지 시간)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만약 트럼프 당선인이 사임을 요구한다면 응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법적으로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냐는 추가질문에 “없다”고 추가 부연없이 단언했다.
통상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은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통화 정책의 기본으로 꼽힌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여러 차례에 걸쳐 연준의 의사결정에 불만을 표하거나 앞으로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파월 의장에 대해 “2026년 임기가 끝나면 재선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금리 결정과 관련 “최소한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재집권 시 파월 의장이 임기를 채우기 전 사퇴 요구에 응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일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이같은 관측에 선을 그은 것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대선이나 정치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정치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칫 불거질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행정부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의 정책 변화에 따른 경제 영향에 대한 질문에 “원칙적으로 행정부의 정책이나 의회가 마련한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연준이 목표를 추구하는 데 중요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다른 요인들과 함께 이러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예측이 우리의 경제 모델에 포함되고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단기적으로 선거는 우리 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어떤 정책 변화가 언제 일어나고 그 영향이 어떨지, 과연 영향을 미칠지, 어느 정도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준은 기준금리를 현행 4.75~5.0%에서 4.5~4.75%로 낮췄다. 지난 9월 0.5%포인트의 금리 인하에 이어 2회 연속 금리 인하다. 월가와 투자자들은 이번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12월 금리 인하가 중단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에 쏠렸다. 파월 의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놨지만 12월 금리 인하 중단 가능성을 열어두는 표현도 나왔다. 우선 파월 의장은 “경제지표를 보면 연준이 기준 금리를 중립 수준(인플레이션을 부추기지도, 둔화하지도 않는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시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경제는 좋기 때문에 이런 환경의 장점을 활용해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12월 동결 여부는 아직 알수 없지만 연준이 동결할 수 있는 경제 여건은 갖춰졌다는 판단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치솟는 국채금리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반응”이라고 답했다.
파월은 현재 물가와 고용, 성장률 등 미국의 경제가 좋은 위치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부채와 지정학 환경을 리스크로 꼽았다. 그는 “미국의 부채가 늘어나는 경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이는 경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또 “전세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지금까지는 (지정학 리스크가) 미국 경제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이제 이런 상황은 유가나 다른 어떤 요인들로 인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