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메모리 대기업 키옥시아 홀딩스(옛 도시바 메모리)가 반도체 시황 악화로 연기했던 상장 시계를 다시 돌려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절차를 완료하기로 했다. 시장의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상장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식을 일본에서 처음 시도한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키옥시아는 이날 오후 금융청에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한다. 시가총액은 1조엔(약 9조원) 이상을 목표로 한다. 앞서 키옥시아는 올 8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했고, 10월 중 상장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후 반도체 시황 침체로 제대로 된 시장 평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상장 시점을 미루기로 했다.
이번에 키옥시아는 ‘승인전제출방식(S-1방식)’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채택해 상장을 진행한다. 일반적인 상장 절차에서는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 예비심사를 승인한 뒤 기업이 금융청에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이후 기관투자자와 협의해 신주 발행 가격 등을 정한다. 반면 S-1에서는 예비심사 청구 때 유가증권신고서를 함께 내기 때문에 거래소의 상장심사와 금융청의 공시심사(유가증권거래소 내용 심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상장 승인 전 유가증권신고서가 제출되면 증권회사 등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실시할 수 있어 기존 방식으로 통상 한 달은 걸리던 상장 소요 기간을 10일 정도 단축할 수 있다. S-1은 2023년 10월부터 일본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됐으나 실제로 이 절차를 밟는 것은 키옥시아가 처음이다.
키옥시아가 S-1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하기로 한 배경에는 변동성 심한 반도체 시황이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는 견조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향후 정책에 따라 관련 시황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 상장 절차 기간 단축이 가능해지면 키옥시아와 투자자가 각각 예상하는 가격의 괴리를 좁히기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키옥시아는 도시바의 반도체 메모리 사업이 독립해 2017년 설립된 회사로 당시 3년 후 상장을 목표로 했다. 2020년 도쿄증권거래소의 상장 승인까지 진행됐지만, 미·중 대립 심화로 직전에 상장을 취소한 바 있다. 2021년 여름에도 상장을 검토했지만, 신청 절차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키옥시아 최대 주주는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으로 SK하이닉스(000660)는 2018년 이 컨소시엄에 약 4조원을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