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허락 왜 받나"…'사체훼손' 신상공개 유예에 시민들 ‘부글'

"흉악범 인권 왜 따지냐" 불만
"피해자 인권을 더 존중해야"
경찰, 지난 7일 신상공개 결정
피의자, 즉시 이의신청에 유예
피의자 동의 없으면 5일 뒤 공개
전문가 "국민 법 감정과 안맞아"

6일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 A(38)씨에 대한 현장 검증이 진행됐다. 사진은 A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함께 근무하던 30대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한 30대 현역 육군 장교에 대한 신상공개가 결정됐지만, 피의자의 거부로 공개가 유예됐다. 여기에 피의자가 법원에 신상정보 공개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자 시민사회에서는 “신상 즉시 공개를 왜 범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냐”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강원경찰청 등에 따르면 ‘북한강 시신 훼손’ 피의자 A(38) 씨는 이날 춘천지방법원에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또한 A 씨는 본안소송인 '신상정보 공개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도 함께 걸었다.


앞서 지난 7일 강원경찰청은 ‘북한강 시신 훼손’ 피의자 A(38) 씨에 대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신상정보 공개를의결했다. 피해자의 유가족도 A 씨의 신상 공개를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개가 결정된 직후 A 씨가 이의를 신청하면서 경찰은 유예기간을 둘 수밖에 없게 됐다.


현행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범행수단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충분한 증거,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 범행 후 정황, 피해자 보호 필요성 등의 요건을 충족했을 경우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다만 신상정보 공개의 주체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에게 신상정보 공개를 통지한 날부터 5일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신상을 즉시 공개하는 것은 피의자가 서면으로 이의 없음을 표시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5일이 지나더라도 A 씨의 신상 공개가 불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이 A 씨가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경우 오는 13일 신상 공개가 가능해지지만, 만약 법원이 이를 인용한다면 신상 공개는 본안소송 판결 전까지 잠정 중단된다. 가처분 인용 여부는 오는 11일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020년 7월 경찰은 텔레그램 ‘n번방’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구매했다는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했지만, 피의자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공개를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거주하는 30대 정 모 씨는 “시신을 고의로 훼손해 강에 유기하는 등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을 즉시 공개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흉악범의 인권을 따질 시간에 피해자의 인권을 더 잘 챙겨줘야 할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또 다른 시민 박 모 씨는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마련된 신상공개와 관련해 피의자의 의견을 왜 존중해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피해자 유가족이 동의를 했음에도 즉시 공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곘나”라고 말헀다.


전문가들도 현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사체훼손과 같은 극단적 범죄가 발생할 때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재범’이기 때문에 신상공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경우 피의자의 의사를 반영해주는 절차가 존재한다면 법이 지나치게 범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거 신상 공개 제도 도입 초기에는 사회적 응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막기 위한 법적 보호 장치를 해놨지만, 현재는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흉악 범죄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상 공개 절차를 개선하고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A 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3시께 부대 주차장 내 자신의 차량에서 함께 근무하던 군무원 B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B 씨를 살해했다. 피해자 B 씨는 임기제 군무원으로 A 씨와 과천시 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달 말 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이후 A 씨는 오후 9시께 한 공사장에서 시신을 훼손하고 이튿날 오후 9시 40분께 시신과 범행 도구를 북한강변에 유기했다.


경찰은 이달 3일 오후 7시 12분께 서울 강남구 일원역 지하도에서 A 씨를 긴급체포했으며, 이달 5일 춘천지법 박성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A 씨를 이른 시일 내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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