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감세 속도전'…"韓도 친기업 정책 펼쳐야"

◆ 법인세 등 취임 100일내 처리
美 법인세율 21%→15% 인하 추진
韓과 최고세율 격차 9%P로 확대
국내기업 '엑소더스' 부추길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법인세 추가 인하를 포함해 취임 100일 내에 모든 감세 법안을 통과시키는 속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최대 20%의 보편 관세를 통해 해외 기업의 미국 이전을 강요하면서도 미국 업체나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파격적인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야당은 연내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기업 옥죄기에만 몰두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엑소더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 기사 3면


7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에 만료되는 ‘감세와 일자리법(TCJA)’을 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TCJA는 트럼프가 2017년 통과시킨 법으로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추가로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고 팁에 붙는 세금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감세 바람이 거센 미국과 달리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4%(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로 지난해 기준 주요 7개국(G7) 평균인 21.4%를 웃돈다. 특히 트럼프의 법인세 15% 인하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양국의 세율 차이는 3%포인트에서 최대 9%포인트로 크게 벌어진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를 비롯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와 안보 상황 변화를 점검·대응하기 위해 10일 국무위원 및 대통령실 핵심 참모진과 ‘긴급 경제‧안보 회의’를 개최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를 열흘 앞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시간주 유세에서 “내가 하려는 것은 (법인세를) 21%에서 15%로 낮추는 것”이라며 “법인세율을 70%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모두가 (미국을) 떠나 일자리는 없어지고 나라는 죽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으로 꼽히는 미시간주에서 법인세 인하를 통한 제조업 육성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또 “우리는 일본·중국·한국과도 경쟁해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 등 주요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법인세 인하 정책이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유치와 자국 기업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8일 “트럼프 당선인이 법인세를 낮추려는 데에는 자국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촉진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며 “미국이 법인세 인하에 나설 경우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을 통한 혜택을 바라면서 생산 시설을 이전할 유인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정부 초대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 스콧 베센트는 올해 1월 미 경제 잡지 ‘국제경제(TIE)’에 기고한 글에서 내년에 만료되는 ‘감세와 일자리법(TCJA)’의 영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무역 파트너들의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해 미국 근로자들이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로 밀려나고 있다”며 “미국이 이 관행을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제조업 기반의 공동화를 허용하고 있고 미국의 성장이 외국 산업정책의 영향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분석 기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감세정책이 일정 기간 재정적자를 불러오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연방재정위원회(CRFB)’는 미국 법인세율이 21%에서 15%로 떨어질 경우 2035년까지 재정수입이 2000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또 다른 분석 기관인 택스파운데이션은 트럼프 당선인의 조세정책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이 장기적으로 0.8%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금도 0.8% 늘어나고 취업자 수(전일제 환산 기준)는 59만 7000명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관세 인상 효과를 빼고 보면 감세정책에 따라 GDP가 장기적으로 2.4%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을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한국의 상황이다.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과 중동 불안, 트럼프 2기의 더 강해진 미국 우선주의가 예상되는 데도 국내 정치권은 기업들의 뒷다리만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이후 지지층의 반발이 커지자 상법 개정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독립이사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논의 대상이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면 강행 처리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야당 안대로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넓어지면 연구개발(R&D)과 증자도 소송 대상이 돼 경영진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복합 위기 속 한국 기업들이 벼랑 끝에 선 상황”이라며 “야당은 상법 개정을 멈추고 반도체와 주력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한국은 야당의 반대에 법인세 인하와 보조금 지급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법인세만 놓고 보면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세제가 복잡하고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과세표준 구간이 4단계 이상인 나라는 한국과 코스타리카밖에 없다.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2023년 기준 5.4%로 OECD 평균(3.8%, 2022년 기준)보다도 높다. 관세청장과 세제실장을 지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한국의 경우 오히려 노동정책이나 규제 경직성이 높아 기업 투자 활성화 정책이 패키지로 추진되지 못한다면 법인세 인하로 재정 불안만 키울 여지가 크다”면서도 “미국처럼 친기업적 정책 기반이 갖춰진 곳이라면 법인세 인하가 곧바로 기업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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