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259960)의 신작 ‘리댁티드’는 ‘칼리스토 프로토콜’과 ‘하데스’를 대놓고 섞은 듯한 게임이다. 어떤 장면에서도 두 게임 중 하나의 향취가 짙게 풍긴다. 그런데 너무 잘 섞었다. ‘비빔’이 게임마저 대화합으로 이끈 모습이다. 장르의 유사성을 따르면서도 적절한 연출과 세계관으로 개성을 섞어 새로운 게임으로 완성했다. 중독성도 강하다. 몇 시간만 해본 뒤 소감을 내보려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시간이 훌쩍 지났다.
리댁티드는 크래프톤 산하의 북미 스튜디오인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SDS)가 전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2320년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칼리스토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원작의 설정을 차용했지만 게임 자체는 완전히 다르다.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3인칭(TPS) 시점의 3D 액션 호러였던 원작과 달리 리댁티드는 미국 카툰풍 그래픽으로 펑키한 느낌을 풍긴다. 죽음을 반복하며 탈출을 노려야 하는 주인공은 안쓰럽지만, 라이벌도 그렇고 적들도 그렇고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코믹한 느낌이 강하다.
게임은 죽음을 통해 성장하는 SF 로그라이크 던전 크롤러 장르다. 일반 이용자라면 낯설 수밖에 없지만, 게임을 좀 좋아하는 이라면 로그라이크 액션의 대표격인 ‘하데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타격감과 조작감,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까지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유사 게임이라고 볼 수 없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잘 맞춰서 크게 단점을 보이지 않았다. 첫 탈출 직전까지, 초반부를 플레이하면서 상당한 수작의 냄새를 맡았다.
게임은 목성의 얼음 위성 칼리스토에 위치한 최첨단 교도소 ‘블랙 아이언’에서 펼쳐진다. 이용자는 이 교도소의 보안 요원이다. 목표는 교도소 내의 감염된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탈출을 노리는 여러 ‘라이벌’들을 제치고 마지막 탈출 포트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수라도 한 번에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죽음을 통해 다양한 무기와 슈트로 무장하고,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스스로를 강화해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주인공이 죽으면 ‘부활’하는 게 아니라는 것. 죽은 캐릭터는 전장의 시체로 남고 이용자는 (완전히 똑같은 외형이지만) 새로운 교도관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력자는 죽은 ‘전임자’를 조롱하며 “이번엔 잘 해보라”는 식으로 부추긴다.
앞서 사망한 교도관들이 남긴 무기와 슈트, 해금된 업그레이드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해 새로운 탈출을 시도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몇 스테이지 가지도 못할 만큼 난이도가 높지만, 장비와 능력을 강화하면 일부 스테이지에선 ‘10초 컷’도 가능해진다. 게임 종료가 계속 이어지고 같은 게임을 반복해야 하는 과정은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새로운 도전마다 조금씩 스토리가 진척되고 능력을 해금하는 목표가 뒤를 받치면서 이용자를 계속 붙들어 놓는다.
전투 방식은 크게 근접 무기와 총기, 중력으로 적을 밀어내는 ‘그립’을 활용하는 게 기본이다. 그립을 제외한 무기는 해금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무기로 대체할 수 있다. 스테이지를 통과할 때마다 조금씩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 어떤 강화 능력을 얻느냐에 따라 게임마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차이난다. 조작은 어느정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복잡하진 않다. 그보다 능력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보스전 또한 반복 전투를 통해 공략 방법을 깨달으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
여기서 ‘하데스’와의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난다. 바로 속도전이다. 반복되는 전투와 능력 강화로 게임이 쉬워진 시점부터는 새로운 지향점이 생긴다. 홀로 탈출구를 향해 달려가던 주인공은 낯선 ‘라이벌’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주인공처럼 교도관일수도, 수감된 죄수일 수도 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이들은 주인공보다 먼저 탈출구로 달려가 칼리스토를 탈출하려 한다. 주인공은 이들의 발목을 잡을 스킬을 새롭게 배우고, 각 스테이지의 클리어 속도를 높이면서 이들을 추격해야 한다. 보스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더 빠르게 클리어해 라이벌들과의 시간차를 줄여야 한다. 라이벌들 또한 스테이지에 폭탄을 심어놓거나 시야를 제한하는 식으로 이용자를 괴롭힌다. 생존 자체가 목적이던 초반부에서 속도전으로 긴장감을 주는 요소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 하단에 라이벌들의 진행 상황이 나타나 지속적으로 이용자를 압박한다.
사망한 전임자도 중요한 차별점이다. 보스전과 같은 특정 스테이지에서 사망하면 일정 확률로 해당 시체가 그곳에 그대로 남는다. 새로운 게임을 통해 해당 스테이지로 가면 직전 게임에서 획득했던 무기와 슈트, 업그레이드를 그대로 유지한 ‘또 다른 자신’이 부활해 이용자를 공격한다. 이용자가 강해질수록 시체도 강해지는 셈이다.
장르적인 장점 차용과 매력적인 차별점으로 완성도를 높였지만 단점이 없진 않다. 매번 새로운 교도관이 등장하는 식이다보니 주인공 자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주인공에 심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워 게임의 집중도를 분산한다. 라이벌들의 프로필을 해금하며 이들의 사연을 볼 수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심도 있다거나 진행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전체적으로 스토리에서는 크게 기대할 바가 없는 셈이다.
원작의 설정을 이어받은 주요 전투 방식인 ‘그립’도 아쉽다.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단순히 적들을 밀어내는 데 그치는 수준이라 초반 효용성이 크지 않다. 이후 근접 무기와 총기 등을 활용한 전투 방식에 익숙해지면 굳이 그립을 업그레이드해 활용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투 방식이 다채로운 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가장 큰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그 자체다. 로그라이크 액션이라는 장르 특성 상 단조로운 반복 전투를 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라면 초반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장르의 호불호 자체가 크다보니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하기는 망설여진다. 다만 장르적인 특성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실망하진 않을 게임이다. 가격 또한 스팀 기준 국내 가격이 2만 원대로 최근 출시되는 게임보다 저렴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