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관리’ 한국이 최고라더니…환자 되려 늘어, 왜?

대한고혈압학회 9일 팩트시트 공개
성인 고혈압 유병인구 1300만명 추정
20~30대 청년층 유병자 90만명 육박
성인 고혈압 유병률 22.4% 제자리걸음

신진호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이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이다. 안경진 기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고혈압 관리의 모범국가로 꼽힌다. 국제보건 부문 학자인 사라 피커스길(Sarah J. Pickersgill) 워싱턴대학 교수팀은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한 논문에서 고혈압을 가장 잘 관리한 국가로 한국과 캐나다, 아이슬란드 3곳을 지목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고혈압 관리 실태에도 불구하고 국내 고혈압 유병인구는 1300만 명을 넘보고 있다.


유례 없는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20~30대의 치료 성적이 저조한 탓에 전체 고혈압 환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고혈압학회는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고혈압 팩트 시트 2024'를 공개했다.


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 인구의 30%인 1300만 명이 고혈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와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에 근거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의 고혈압 유병률과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고혈압의 기준은 수축기혈압 140mmHg 이상 또는 이완기혈압 90mmHg 이상이거나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로 삼았다. 20세 이상 성인 3명 중 1명 꼴로 고혈압을 앓고 있는 셈이다.



사진 제공=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유병자 중 의사로부터 고혈압 진단을 받은 사람의 분율인 고혈압 인지율은 77%, 고혈압 치료제를 한 달에 20일 이상 복용한 사람의 분율인 치료율은 74%로 나타났다. 고혈압 유병자 중 실제 수축기혈압과 이완기혈압이 각각 140mmHg, 90mmHg 아래인 사람의 분율인 조절률은 59%로 집계됐다. 이들 지표는 모두 연령이 높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현창 대한고혈압학회 역학연구회장(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1150만 명의 고혈압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1,090만 명이 고혈압 치료제를 처방 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치료 받는 환자도 810만 명이나 된다"며 "1990년대까지 고혈압 환자의 극히 일부만 적절한 치료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30여 년새 우리나라의 고혈압 관리 수준이 빠르게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30년간 연령표준화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80%가까이 감소한 데도 성공적인 혈압조절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전체 고혈압 환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고혈압의 유병률도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2022년 기준 성인 남녀의 연령표준화 고혈압 유병률은 22.4%로 2001년 23.6% 대비 1.2%P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는 고혈압 일차예방의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고혈압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20~30대 젊은 층의 저조한 관리 지표에 기인한다고 봤다. 팩트 시트에 따르면 20~30대 청년층 고혈압 유병자는 89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36만 명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13만 명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고혈압 유병자의 인지율은 36%, 치료율은 35%, 조절률은 33%로 집계됐다. 고혈압 의료이용자 대상으로만 집계한 지속치료율도 20대의 경우 24%, 30대의 경우 40%로 다른 연령대보다 낮았다. 김 회장은 "약만 먹으면 혈압이 정상 범위로 조절될 수 있는 데도 약을 먹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복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라며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학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30대를 포함한 전체 고혈압 환자의 조절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국민 홍보, 정책 수립 등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신진호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전국민 대상 건강검진과 우수한 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온 덕분에 고혈압 진단율은 물론 관리 수준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었다"면서도 "10여년 간 우리나라 고혈압 조절률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혈압의 과학적 근거 확립, 대국민 홍보를 통한 고혈압 인지도 향상, 고혈압 관련 정책수립의 주도적 역할, 고혈압의 글로벌 리더”의 미션을 충실하게 달성하기 위해 맡은 책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1990년 8월 대한순환기학회(현 대한심장학회) 산하에 창립한 고혈압연구회가 모태다. 1994년 6월 창립 총회 및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출범을 공식화했고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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