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우발적?…'엘리트 장교'의 북한강 시신훼손 사건의 전말[폴리스라인]

우발적? 의도적?… 육군 간부의 잔혹한 범행 수법
범행 은폐 위해 피해자 휴대전화로 본인 행세
현역 군인 최초 신상공개 결정… 피의자는 반발
전문가 “제도에 문제 있어”… 경찰은 수사 지속


38세의 현역 육군 간부가 자신과 함께 근무하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군인이 흉악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38세의 나이에 육군 중령 진급을 눈 앞에 둔 ‘엘리트 장교’ A 씨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시신을 훼손하고 이를 유기한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범행 당일부터 현재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을 정리했다.



6일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 A(38)씨에 대한 현장 검증이 진행됐다. 사진은 A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 우발적? 의도적?… 육군 간부의 잔혹한 범행 수법


이달 2일 오후 2시 36분. 강원도 화천경찰서에 ‘북한강에 시신 일부가 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화천대교 하류 300m 지점이었으며, 최초 신고자는 고등학생이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재난구조대, 수색견 등을 투입해 나머지 시신 수색에 나섰다. 이후 최초 시신 발견 지점에서 약 600m가량 떨어진 붕어섬 인근 선착장에서 비닐에 담긴 몸통, 팔, 다리 등 사체 일부의 7~8부분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즉시 지문과 디옥시리보핵산(DNA) 감정 등의 방법을 동원해 신원 확인에 나서 피해자가 얼마 전까지 과천시의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30대 임기제 군무원 여성 B 씨라는 것을 파악했다. B 씨는 지난달 말 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시신이 담겨 있던 비닐을 묶은 테이프에서 한 남성의 지문을 발견했다. 경찰은 육군 소속 간부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CCTV와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을 통해 추적을 벌이다 이달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서 A 씨가 운전하던 승용차를 발견했다. 이후 7시 12분께 서울 강남구 일원역 지하도에서 A 씨를 발견, 긴급 체포했다. A 씨는 현장에서 저항 없이 체포됐으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중령(진)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송파구 소재의 산하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A 씨와 함께 근무했고, 서로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부대 이동 3일 전인 지난달 25일 오후 3시께 부대 주차장 내 자신의 차량에서 B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B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 이후 A 씨는 옷가지로 시신을 가린 뒤 B 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해 전근을 위해 짐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퇴근 후 부대 인근에서 시신 훼손 장소를 물색했고, 인근 철거 공사장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 범행 당일 오후 9시께 공사장에서 시신을 훼손한 A 씨는 다음날 오후 9시 40분께 시신과 범행 도구를 비닐봉투에 넣고,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무거운 돌을 함께 넣어 북한강변에 유기했다. 10여년 전 A 씨는 화천군 일대에서 근무를 한 경험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이후 의류와 소지품 일부를 태웠으며, 차량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세차를 하기도 했다.



6일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 A(38)씨에 대한 현장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A씨가 다리 위에서 훼손된 시신이 담긴 봉투를 강 아래로 떨어뜨리는 범행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범행 은폐 위해 피해자 휴대전화로 본인 행세… 실종신고 취소 시도도


범행이 발생한 날은 B 씨의 계약 만료 4일 전이었다. 피해자가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무단결근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A 씨의 범행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A 씨는 B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범행 발생 이틀 뒤 A 씨는 B 씨의 휴대전화로 부대 관계자에게 “남은 근무 일수는 휴가 처리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부대 측에서 B 씨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A 씨는 받지 않았고 B 씨의 계약은 그대로 만료됐다.


A 씨는 B 씨의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켜기를 반복하며 생활반응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B 씨의 가족에게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 당분간 들어가지 못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B 씨가 귀가하지 않자 미귀가 신고를 했지만, 범죄에 희생됐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A 씨는 B 씨의 가족이 한 미귀가 신고를 취소하려고도 시도했다. B 씨 가족의 신고를 접수한 서울 관악구 소재의 한 파출소는 B 씨의 휴대전화로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걸었다. A 씨는 파출소 직원을 상대로 B 씨의 인적 사항을 말하고 목소리를 흉내내며 신고 취소를 시도했다.


경찰은 B 씨의 가족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그는 딸의 직장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신고를 취소했다. 이후 B 씨의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재신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가 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춘천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역 군인 최초 신상공개 결정… 피의자 반발·소송에 ‘차일피일’


7일 강원경찰청은 A 씨에 대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신상공개 여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신상정보 공개를 의결했다. 범행 방식이 잔인하고 신상공개가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다는 취지에서다.


현행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범행수단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충분한 증거,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 범행 후 정황, 피해자 보호 필요성 등의 요건을 충족했을 경우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A 씨의 신상공개는 지난 2010년 신상공개제도가 도입된 뒤 현역 군인 신분으로는 처음이다. 사체를 훼손해 유기하는 ‘토막 살인’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로서는 오원춘, 장대호, 고유정 등에 이어 10번째다. 현재까지 A 씨를 제외하고 총 57명의 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통상 신상공개 대상 피의자의 신원이 공개 의결 직후 공개돼 왔지만, A 씨의 경우 공개가 유예됐다. A 씨가 신상공개에 반발해 이의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에게 신상정보 공개를 통지한 날부터 5일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즉 신상 ‘즉시’ 공개는 피의자가 서면으로 이의 없음을 표시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시민사회는 분노했다. 흉악범의 신상 공개는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왜 피의자의 허락을 구해야 하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피해자 유가족이 동의를 했음에도 즉시 공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볼멘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A 씨는 더 나아가 춘천지방법원에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본안소송인 '신상정보 공개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도 함께 걸었다.


5일이 지나더라도 A 씨의 신상 공개가 불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이 A 씨가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경우 오는 13일 신상 공개가 가능해지지만, 만약 법원이 이를 인용한다면 신상 공개는 본안소송 판결 전까지 잠정 중단된다. 가처분 인용 여부는 오는 11일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020년 7월 경찰은 텔레그램 ‘n번방’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구매했다는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했지만, 피의자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공개를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6일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 A(38)씨에 대한 현장 검증이 진행된 가운데 교량 앞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 “제도에 문제 있어”… 경찰은 수사 지속 진행


전문가들도 현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사체훼손과 같은 극단적 범죄가 발생할 때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재범’이기 때문에 신상공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경우 피의자의 의사를 반영해주는 절차가 존재한다면 법이 지나치게 범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거 신상 공개 제도 도입 초기에는 사회적 응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막기 위한 법적 보호 장치를 해놨지만, 현재는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흉악 범죄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상 공개 절차를 개선하고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미궁에 빠진 범행 동기와 계획살인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와 피해자 휴대전화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A 씨가 범행 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B 씨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는 점, 범행 후 사체 유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는 점 등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