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막아도 '채권자경단'까지 막을 수 있을까…시작된 트럼프와 시장의 싸움

英 트러스 총리 끌어내린 채권자경단
美 대선맞아 미국 시장에서도 매도세
관세·연준 압박 등 인플레이션 요인
트럼프, 정책 강도 높을수록 채권금리 부담
전문가들 “채권 시장이 트럼프 행정부 견제”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딩 데스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이름이 적힌 모자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2년 9월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감세안을 발표하자 영국 국채(길트) 10년물 금리는 4일 만에 120bp(1bp=0.01%포인트) 폭등했다. 재원 계획 없는 감세안이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길트 금리 폭등은 영국 연기금의 유동성 부족 사태로 번졌고 트러스 총리는 결국 취임 44일 만에 사퇴했다.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의 등장에 영국의 새 권력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채권 자경단은 인플레이션이나 재정적자를 부추기는 정책이 펼쳐질 때 시장이 국채 투매로 대응해 정책 교정을 압박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러스 총리는 시장에 대항했지만 시장은 무자비했다”고 평가했다.


2년 전 영국 트러스 총리를 끌어내렸던 채권 자경단의 그림자가 대선을 마친 미국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9일(현지 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거래일에 4.310%로 마감해 9월 최저치(3.623%)보다 69bp 높은 수준에 거래됐다. 10년물 금리는 트럼프 당선 후 4.435%까지 오르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편 관세는 수입 물가 상승, 불법 이민자 축출은 임금 상승의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주의 정책으로만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0.9%포인트 오를 것으로 봤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독립성 침해 우려도 채권 매도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앙은행의 금리 기능을 무력화해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는 새 정부의 기조를 고려할 때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춰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라는 내년 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선거 전 4차례에서 1차례로 줄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이 금리를 낮추도록 압박하고 여기에 관세,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이 결합될 경우 2028년 말 물가 상승률이 추가로 7.4%포인트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 자경단이라는 용어를 만든 야데니리서치의 창립자 에드 야데니는 “아직은 10년물 금리가 5%까지 갈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채권 자경단은 5% 선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채금리가 높아지면 트럼프 행정부의 부담도 커진다. JP모건은 “의회까지 공화당이 휩쓰는 ‘레드 스위프’가 가장 큰 테일 리스크”라며 “더 높은 관세와 대량 추방을 수반할 수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인플레이션 재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추진 강도가 강할수록 경제의 위험도 커지는 셈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연구책임자인 마이클 스트레인은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는 주체는 연준이 아니라 채권시장”이라며 “마지막에 웃는 쪽은 (트럼프가 아닌) 채권 자경단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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