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시장에 ‘규제·활성화 방안이 추가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동시에 제기되는 배경에는 현 시장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시장은 해마다 투자자 수가 느는 등 외적 성장을 계속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시장이 또 한 차례 뜀박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세조종 등 규제 방안을 담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것은 7월 19일부터다. 2021~2022년 원화·코인 마켓에서 영업중지(상장폐지)된 가상자산이 1053개에 달하는 등 이른바 ‘불량 코인’이 속출했지만 법적 규제는 이제 시작 단계인 셈이다. 같은 기간 불안한 가격 흐름으로 투자유의 종목에 지정된 가상자산만도 1010개에 달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규제 일변도로 법적 장치가 마련돼 왔다는 점에서 ‘국내 가상자산시장이 성장보다는 퇴보할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2017년 12월 범정부 긴급 대책 발표를 시작으로 자금세탁부터 불공정거래까지 규제책이 줄을 이었지만 가상자산시장 활성화를 꾀할 뚜렷한 방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화우가 공동 개최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100일…성과와 과제’ 세미나에서 규제와 성장에 대한 각종 방안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이유이기도 하다. 세미나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는 국내 가상자산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범죄 예방 및 시장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보현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안착을 위한 법률 제언’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용자 보호, 시장 건전성 확보라는 공감대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대한) 입법이 이뤄졌다”며 “앞으로는 유통, 영업 행위에 대한 규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가 대표적으로 제기한 부분은 법인에 대해 가상자산 계좌를 허용해야 한다는 측면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용자 예치금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이상 거래 감시) △가상자산의 보관 △임의적 입출금 차단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가상자산발행인 자격·발행공시 기준 및 절차, 주요 공시 사항 △공모 발행 모집 사용 규제 △가상자산사업자 종류별 세분화된 영업 규제 등을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법인에 가상자산 계좌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은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 변호사는 “실명확인입출금 계정과 관련해서는 영업에 대한 규제가 많다”며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현재 금지하고 있는 법인에 가상계좌 보유를 허용할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개인과 함께 법인에 대해서도 가상계좌를 보유·거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실물경제 융합형 혁신 서비스 출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가상자산의 경우 거래소는 물론 장외거래(OTC) 등 우회적 방법을 통한 매매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반면 실제 제품을 구입하는 등 실물경제와 연결된 서비스는 전무하다. 가상자산 거래가 해마다 늘고 있는 만큼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겸업 허용 등 입법을 통해 가상자산과 실물경제가 연결돼 이뤄질 수 있는 서비스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세조종을 근절할 규제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김용제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장검사는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1년 성과로 본 가상자산 수사’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정보)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곧 공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실질적으로는 해외에서 사업체를 만들어 국내에서 영업을 하려는 시도가 많다”며 “시장 참여자에 대한 경보 시스템이 정비돼야 제도권 밖의 범죄와 피해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매 통로가 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가 동등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고 위험을 사전에 고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범죄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이 이용자 보호 공백, 시장 질서 확립 등을 위해 여러 성과를 냈지만 (범죄) 대응 시스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할 부분이 많다”며 “가상자산의 출현으로 탈세, 외국환 거래 위반 등 국내 경제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지는 않는지도 파악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법 처리된 가상자산 범죄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범죄로 얻은 부로 이른바 ‘큰손’이 되고도 처벌 받지 않은 이들이 시장에 머물러 있다는 점 자체가 시장의 불안요소”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 당국이 지향하는 가상자산시장 정책 방향도 결국은 신뢰 구축이다. 시세조종 근절을 한 축으로 국내 가상 사업자들에 대한 법률 준수, 거래 기록 유지,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자율 규제 이행 여부 등까지 폭넓게 감독한다는 것이다.
이날 ‘가상자산 감독·검사 방향’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현덕 금융감독원 가상자산감독국장은 “국내 가상자산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 이용자 중심이자 알트 코인 비중이 높다는 점”이라며 “글로벌 시세보다 높은 가격대가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준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 수는 788만 명가량이다. 국내 가상자산 중 비트코인(BTC)이 차지하는 비중은 38% 안팎으로 글로벌 시장(60.5%)보다 낮다. 이 국장은 “불확실성 부분에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를 명확히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며 “발행 공시나 건전성 영업 행위, 진입·퇴출 명확화 등을 한층 명확·고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