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의 휴전 협상을 중재하던 핵심 국가인 카타르가 사실상 ‘중재 포기’를 선언했다. 직접 소통을 하지 않는 양쪽을 오가며 이견을 조율해왔던 카타르가 손을 떼면서 14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자전쟁 종식에 대한 희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CNN 등에 따르면 카타르는 9일(현지 시간) 가자전쟁 휴전 협상을 중재하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카타르 외교부 역시 이날 낸 성명에서 “열흘 전 마지막 협상 시도에서 당사자들이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중재 노력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며 “하마스와 이스라엘을 중재하려는 카타르의 노력은 현재 중단된 상태”라고 확인했다. 카타르는 다만 가자전쟁 중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면서 “당사자들이 잔인한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와 진지함을 보여준다면 파트너들과 함께 노력을 재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하마스가 협상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미국이 카타르 도하에 소재한 하마스 정치국 사무소의 추방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카타르 외무부는 이 보도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다만 가디언 등은 “하마스가 카타르를 떠나 튀르키예·이라크 등으로 사무소를 옮길 준비를 해왔다”면서 “하마스가 카타르를 떠나면 이란의 하마스 지배력이 더 강화될 것”이라며 로이터의 보도에 힘을 실었다.
카타르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로 이집트와 함께 가자지구에서 휴전과 인질 석방에 관한 협상을 진행해온 핵심 중재국이다. 카타르는 특히 직접적인 소통을 거부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를 오가며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협상은 수개월간 교착상태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면 철군 및 영구 휴전을 요구하는 하마스와 일시 휴전을 통한 인질 97명의 우선 석방을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요구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결국 카타르는 양측 모두 휴전을 하려는 의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국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분석가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물론 지난달 야히아 신와르가 사망한 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하마스 지도부 모두 당분간 전쟁을 이어가는 게 내부 단속 등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카타르의 중재 포기 선언이 미국의 요구에 따른 작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에 압력을 가해 휴전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가디언 역시 “이번 요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 마지막 노력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그러나 휴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즉각적인 징후는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가자지구에서는 9일에도 16명의 주민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목숨을 잃는 등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