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이 독식해 왔던 국내 상장사 공개매수 주관 시장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9월 NH증권이 MBK파트너스와 함께 2조5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고려아연(010130)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자리를 비운 사이 경쟁사들이 하나둘 따라 붙는 모습이 연출됐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부터 이날까지 국내 증시에서 이뤄진 총 8개 공개매수 딜(Deal)에 6개 주관사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9월 중순까지 총 14개 딜 중 12개를 NH증권이 독식했고 나머지를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이 하나씩 했던 것과 분명한 차이가 발생했다.
최근 이 시장에서 눈에 띄는 회사는 KB증권이다. KB증권은 고려아연과 최윤범 회장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영풍정밀(036560) 공개매수 주관사로 연이어 나서는 등 '빅딜'을 따내며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KB증권은 또 지난달 코넥스 상장사 관악산업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이달 초 E&F프라이빗에쿼티의 코엔텍(029960) 잔여지분 공개매수 주관사로 잇따라 나서면서 입지를 강화했다.
올해 상반기 현대지에프홀딩스의 현대백화점 공개매수 단 한 건의 실적을 쌓았던 삼성증권도 최근 들어 치열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이날부터 코스닥 상장사 현대이지웰(090850), 그래디언트(035080)의 공개매수 두 건을 연달아 주관하면서 순위표 상위권에 올랐다. KB증권과 삼성증권은 올해 상반기 온라인 청약 시스템을 갖추는 한편 기업금융 부문에서도 영업에 박차를 가하며 속속 딜을 따내고 있다.
이 밖에 미래에셋증권(고려아연)과 하나증권(영풍정밀), 신한투자증권(신세계건설(034300)), 대신증권(윈스(136540)) 등도 지난달부터 각각 한 건씩의 공개매수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증권사들도 실적을 쌓아둔 만큼 앞으로 영업력이 확대되면 관련 딜을 꾸준히 수임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개매수 시장에서 NH증권의 독주 체제가 깨진 것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이 딜에서 MBK와 합을 맞춘 NH증권은 두 차례에 걸쳐 공개매수 가격을 인상하며 지난 9월 13일부터 지난달 14일까지 총 32일 간 딜을 진행했다. NH증권이 고려아연 딜을 진행하던 사이 새 증권사들이 잇따라 딜을 수임한 것이다.
공개매수 과정에서 수반되는 온라인 청약과 금융감독원 보고 체계, 법무법인과의 협업 등 일련의 과정들이 업계에 시스템처럼 자리 잡은 것도 한 몫했다. NH증권이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 건에서 MBK와 처음 선보인 인수합병(M&A) 및 잔여지분 공개매수, 상장폐지, 수천억 원대 브릿지론 제공 등 패키지 딜을 다른 증권사들이 자연스레 학습할 수 있었다.
한편에선 공개매수 발표 전부터 이뤄지는 불법적인 선행매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는다. 실제 지난달 30일 이마트(139480)의 신세계건설 공개매수를 발표한 신한투자증권은 딜 시작 전부터 자사 창구에서 대량 선행 매수세가 확인되며 문제를 키웠다. 대신증권 윈스나 KB증권 코엔텍, 삼성증권 현대이지웰 등의 종목에서도 공개매수 발표 1~2거래일 전부터 거래량이 전보다 증가하고 주가가 미리 오르는 패턴이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