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공사비 부담에…‘책임준공’ 발 빼는 건설사들

공사 지연에 PF채무 인수 늘자
DL이앤씨, 천안 공동주택사업
신용 공여 않고 시공사로 참여
현대건설은 '책준 보증' 가입도



건설사들이 주택 건설 사업 수주를 위한 관행으로 굳어진 책임준공(신용공여)을 줄이고 있다. 가뜩이나 공사비와 인건비가 올라 수익성이 낮아진 가운데 근로자들의 노동 여건 개선과 건설자재 수급 변동성 등이 커지면서 공사 기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1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최근 천안 성성호수공원 공동주택 신축사업에 책임준공 확약 없이 시공사 참여를 결정했다. 다만 정해진 책임준공 기한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지체상금 조항이 달렸다.


현대건설은 서울 가산동 LG전자 부지 개발에 나서면서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2000억 원의 책임준공 보증을 발급받았다. 책임준공에 따른 벌칙 조항을 채무인수 대신 손해배상으로 대체하는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 내 공사를 완료하고 사용승인이나 준공을 보장하는 의무를 지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된 기일까지 준공하지 못할 경우 건설사가 사업에 대한 자금 부담을 지게 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GS건설은 부산지사글로벌인반산업단지조성 사업에서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해 1312억 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를 인수하기도 했다. 안산시 단원구에 물류센터를 지은 안강건설은 책임준공 기일로부터 '하루' 늦게 준공했다는 이유로 830억 원의 채무를 떠안으라는 통보를 받고 시행사와 법정 소송 중이다.


시공사가 영세한 시행사 대신 책임지고 사업을 끝마치겠다는(준공) 책임준공 보증을 서는 것은 사업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물론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사들도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건설사의 신용공여를 요구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DL이앤씨 천안 사업장의 경우 하나자산신탁 계열사가 자금 조달에 참여하면서 책임준공이 필요하지 않았던 특수한 사례"라며 "사실상 대부분 PF사업장에서 건설사의 신용공여를 요구하는데 리스크 관리에 나선 건설사들이 참여 자체를 급격히 줄이면서 개발사업 전반이 침체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신탁사들이 자기자금을 활용해 보증을 서던 책임준공 토지신탁 시장도 멈춰섰다. 이제까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와 신용이 낮은 중견 건설사·시행사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지만 미분양 등으로 기존 사업 관리가 어려워진 신탁사들이 잇따라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신탁사의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등 자금 회수가 막혀버린 사업장이 크게 늘어나면서 신탁사의 자기자금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며 "PF 자금을 빌리려면 신용도가 높은 회사가 보증을 약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어디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건설사들이 책임준공을 비롯한 신용공여를 줄이고 있는 이유는 미분양에 따른 사업비 회수가 어려워진 탓이 크다. 심지어 공사비와 인건비가 상승하고 근로자들의 노동 여건 개선과 건설자재 수급 변동성이 커지면서 공사 기한은 계속 늘어지는 추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한기평 신용등급을 보유한 18개 건설사의 PF보증 규모는 79조 1000억 원 수준으로 많은 건설사가 자기자본의 2배가 넘는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코오롱글로벌 등 3개 건설사는 자기자본 대비 3배가 넘는 책임준공을 확약 중이다. 미분양이 발생해 사업비 확보가 어려워도 일단 공사기한을 맞춰야 하는 만큼 운전자본부담이 급증할 수 있는 셈이다. 김현 한기평 책임연구원은 "2020~2021년 분양을 개시하자마자 완판되던 시장에서 건설사들에 책임준공은 PF와 관련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올해 들어 미수금이 늘어나고 미분양과 근로기준법 등 많은 요소들이 준공의 허들을 높이면서 건설사들의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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