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미덥지 못한 국토부 장관의 사과

금융부 김우보


“일은 자기들이 벌여 놓고 총대는 우리더러 메라는 얘기 아닙니까.”


지난달 은행권에 “디딤돌대출 취급을 제한하라”는 국토교통부의 지시가 급작스레 내려오자 시중은행의 한 여신 담당 임원 A 씨는 “참 난처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창구에 쏟아질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는 ‘대출 절벽’ 사태를 부른 책임을 은행이 오롯이 뒤집어쓸까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A 씨는 “정부가 대출 축소를 지시했다는 내용의 공문이라도 보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은행권에서는 “국토부가 그간 ‘정책대출을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말을 바꿔야 하니 은행 뒤에 숨어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은행권의 해석이 과한 것 같지도 않다. 올해 초 국토부는 연간 정책대출 공급 목표를 55조 원으로 잡고 저리의 자금을 시장에 과감하게 풀었다. 정책대출이 시장의 연쇄 매매를 부추겨 전체 가계대출을 끌어올릴 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국토부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은 정책대출을 불쏘시개 삼아 관리 한도를 넘어설 정도로 불어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쯤 되니 국토부도 정책대출을 손봐야겠다 싶었을 것이다. 다만 그간의 입장을 뒤집는 게 민망스러워 조용히 땜질하려던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상황은 국토부의 구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대출 축소 소식이 알려지자 실수요자의 불만은 은행을 넘어 정부로 향했다. 결국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직접 나서 “국민들께 혼선과 불편을 드려 매우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장관의 사과에도 찝찝함은 남는다. 정부는 최근 내년도 정책대출 공급 목표를 55조 원으로 책정했다. 정책대출이 대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고도 올해와 같은 규모로 자금을 풀겠다는 것이다.


올해처럼 일단 대출을 풀어 놓고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다급히 죄려는 셈법인 걸까. 실수요자의 반발이 불 보듯 한데 그때도 다시 은행을 앞세워 숨으려 할까. 비록 숨는다고 해도 화살은 결국 정부로 향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목표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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