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1일 열린 특별국회 총리 지명 선거에서 결선투표 끝에 총리직을 유지하게 됐다. 중의원 선거(총선) 후 진행된 이번 총리 지명 선거는 1차 투표 과반(233표) 득표자가 없어 30년 만에 결선을 치러야 했다. 총리직을 겨우 사수하기는 했지만 자민·공명 여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만큼 이시바 2차 내각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식물 내각’으로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추궁하는 당내 반대 세력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전에 총리 교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총리의 ‘집안 관리’도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NHK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이날 특별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 선거 결선에서 전체 465표 중 221표를 얻어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160표)를 누르고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앞서 진행된 1차 투표에서는 이시바 총리와 노다 대표가 각각 221표, 151표를 얻어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고 곧이어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캐스팅보트를 쥔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 제3야당 국민민주당이 예고했던 대로 결선투표에서 자당 대표에게 표를 줘 ‘(후보 외 투표에 따른) 무효표’를 던졌다. 참의원 투표에서는 한 차례 투표에서 이시바 총리가 총 239표 중 과반인 142표를 얻어 지명이 확정됐다.
지난달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같은 달 9일 중의원을 조기 해산했고 이에 따라 10월 27일 중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지난해 불거진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과 고물가가 민심 이반을 낳아 자민·공명 여당은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시바 총리와 여당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정치색이 유사한 국민민주당이나 일본유신회의 힘을 빌려야 하는 처지다. 양당 모두 정책의 부분 연합에 나선다는 입장이라 기존 ‘자민 1강’ 시대와는 다른 정치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과 예산안 통과를 위해 과반 의석이 필요한 만큼 야당의 목소리가 이전보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민주당은 연 소득 103만 엔을 초과하면 소득세가 부과돼 이를 피하려 일부러 소득을 줄이는 일명 ‘103만 엔의 벽’을 개선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근로소득자 면세 기준을 103만 엔에서 178만 엔으로 올리자는 게 여당을 향한 요구 사항이다. 그러나 세수 감소와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여당의 고민이 크다. 요미우리신문은 “국회는 총선에서 대패한 이시바 총리를 일부 야당이 지탱해 연명하는 기묘한 구도가 될 것 같다”며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야당의 정책 요구를 여당이 차례로 받아들이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1차 내각 각료 중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비롯해 외무상·방위상 등 주요 각료 대부분을 유임했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자민당 출신 각료 2명과 연립 여당 공명당 대표로 취임한 국토교통상은 교체했다. 법무상으로는 스즈키 게이스케 전 외무성 부대신, 농림수산상으로는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 국토교통상으로는 공명당 인사인 나카노 히로마사 전 경제산업성 정무관이 각각 기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