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검은 옷 입고, 근조화환…'남녀공학 추진' 수업 거부 나선 동덕여대

남녀공학 추진 논의 알려지자 반발 확산
설립자 동상에 계란 투척하고 건물 점거
총학생회 "대학본부, 설립이념 기억해야"
일부 학생은 "학습권 침해 불합리" 토로
학교 측 "일방 추진 아냐…책임 묻겠다"

남녀공학 추진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항의로 계란에 맞아 더럽혀진 동덕학원 설립자 조동식 선생 동상. 박민주 기자

“여대가 아닌 동덕여대는 ‘민주동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근조화환을 설치하고 ‘상복’을 입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남녀공학 전환을 몰래 추진한 학교를 규탄합니다.” (동덕여대 학생)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남녀공학 추진 철회 의사를 밝힐 때까지 수업 거부 등 강경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12일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학생들이 분주하게 학교 건물 곳곳에 전단지를 붙이거나 테이프와 스프레이로 학교를 비판하는 글귀를 작성하고 있었다. 건물 벽과 바닥을 막론하고 학생들은 ‘공학 반대’ ‘명애(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을 일컫는 말)롭게 폐교하자’ 등의 문구를 큼지막하게 붙였다.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공학 추진에 반대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박민주 기자

학교 정문 앞에는 ‘학생 몰래 추진한 공학 전환 결사 반대’ 등의 문구를 단 수십 개의 근조화환이 놓였다. 트럭시위의 일환으로 거대한 전광판을 단 트럭이 주차된 채 학교 측을 비판하는 문구를 전시하기도 했다.


캠퍼스에서 만난 동덕여대 학생 정 모(22)씨는 “학교가 제대로 된 소통 없이 학생들의 반대가 있을 걸 알고 쉬쉬하며 몰래 추진한 점에 분노했다”면서 “그간 학생들이 학교 측에 누수 문제나 노화된 시설 보수, 셔틀버스 재운행 등 여러 문제를 건의했는데 하나도 들어주지 않다가 갑자기 학생 수를 늘리겠다면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정문에 '남녀공학 추진'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문구가 붙어 있다. 박민주 기자

학생들의 단체 행동은 앞서 동덕여대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학교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말이 확산되면서 시작됐다. 지난 7일 총학생회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에 반대한다”는 첫 입장문을 발표했고, 이날에도 재학생 약 200명과 본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현아 총학생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동덕여대의 창학 정신은 ‘여성 교육을 통한 교육입국’”이라며 “대학 본부는 설립 이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남녀공학 추진 철회를 촉구했다.


학생들은 수업 거부의 일환으로 본관 등 대부분의 건물 안팎을 점거한 채 출입을 막아섰다.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을 들어가려던 한 학생이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상황도 포착됐다.



12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설치된 동덕학원 창립자 조동식 선생의 동상에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귤을 던지고 있다. 박민주 기자

동덕학원의 창립자인 조동식 선생 동상에는 계란이나 귤을 던지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400여 개에 달하는 과잠을 항의의 의미로 바닥에 펼쳐놓기도 했다. 학생 김 모(21) 씨는 “과잠을 펼쳐 놓은 건 우리가 이렇게 항의한다는 의미에서 한 것이다. 학교가 학생 모르게 남녀공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낀다”며 “총장과 소통이 이뤄질 때까지 시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오후 7시에는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소음·재물손괴 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종암경찰서 경찰관이 학생들을 향해 ‘앞으로 아이도 낳고 육아도 하실 분들’이라고 지칭한 데 대해 ‘여성혐오적 발언’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출동 당시 소화기로 문을 부수려고 하는 등의 행위를 보고 ‘불법행위를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는 일부 학생들은 불편함을 토로했다. 학생들의 점거로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A 씨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동조하지 않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와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남녀공학 추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학생들이 과잠을 400여 벌 벗어 놓았다. 박민주 기자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 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 9월 말부터 중장기 학사구조 및 학사제도 개편방안을 연구하고자 대학비전혁신추진단이 출범했다”면서 “9월 27일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에서 발표된 디자인대·공연예대 단과대학의 발전방안 내용 중 공학전환 사안이 포함되어 있었고, 12일 교무위원회 보고 및 논의를 거쳐 모든 구성원들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학 전환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으며,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며 “그러나 아직 정식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교무위원회 이전인 11일 오후부터 학생들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지성인으로서 대화와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대학에서 이와 같은 폭력사태가 발생 중인 것을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총장은 “(반대 학생들이)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취업·비교과 박람회 현장의 집기와 시설을 모두 파손시켰고, 대학 내 모든 강의실 건물을 무단 점거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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