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느니 폐교하라"…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사태 확산

총학 "여성 위협하는 전환 결사반대" 서명 운동도
학측 "단순 아이디어 논의"…논술고사 앞두고 난색
수능 직전 수험생 불안 확산…입학처 불통 사태도
오랜 '공학 전환' 담론 재조명…"인구감소로 불가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저지하기 위한 동덕여대 재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진 12일 동상에 각종 반대 대자보가 붙어 있다. 박민주기자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저지하기 위한 동덕여대 재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진 12일 동덕여대 본관 앞에 학생들이 벗어둔 대학 점퍼가 놓여있다. 박민주기자

“정말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아직 합격 발표도 안 났지만 너무 심란하네요. 굳이 (원서를) 넣은 이유가 뭐였는데…”


동덕여자대학이 남녀공학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수능을 이틀 앞둔 12일 네이버 카페 '수만휘' 등 유명 입시 커뮤니티에 동덕여대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문의글이 줄줄이 올라오는 등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동덕여대 사태를 계기로 성신여대·광주여대 등 다른 4년제 종합 여자대학교에서도 뒤늦게 자교의 남학생 수용 검토 사실이 알려지고 총학생회가 공식 반대 입장을 내놓는 등 ‘여대 남녀공학 전환’ 담론에 불이 붙은 모습이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서는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이 곳곳에서 전단을 붙이거나 설립자 동상에 달걀을 던지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정문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본관 건물 등을 점거한 채 이틀 연속 강경한 투쟁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본관 앞 바닥 역시 전날부터 줄줄이 배송된 근조 화환과 펼쳐진 학교 점퍼로 꽉 차 있었다. 재학생 김 모(21)씨는 “여대가 아닌 동덕은 동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상복(검은 옷)을 입었다”면서 “학교가 학생 모르게 추진했다는 점에서 분노했다. 총장이 제대로 된 면담에 나설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동덕여대 본부 내에서 공학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학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촉발됐다. 총학생회 ‘나란’ 등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중대 사안을 검토·추진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을 완전히 철회할 때까지 강경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전날 캠퍼스에서 피켓팅과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총장실 앞으로 찾아가 잠긴 문을 부수려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학교 측은 “아직 정식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과잉 반응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날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달 5일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에서 발표된 디자인대·공연예술대 발전방안 내용 중에 공학전환 사안이 포함되어 있었다”면서 “해당 사안은 당일(12일) 교무위원회 보고·논의를 거쳐 모든 구성원들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동덕여대 관계자 역시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뿐”이라면서 “현재 학교 사이트가 다운되고 강의실이 점거돼 수업도 듣지 못하고 귀가하는 학생들도 있다. 다음주가 논술고사인데 큰일”이라고 피해를 호소했다.


다만 학교는 공학전환 안건을 당장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 총장은 “해당 안건은 본 상황에 대처하면서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해 알리겠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이 동덕여대 일부 수시 전형의 최초합격자 발표날이었기에 ‘여대 지망’ 수험생들까지 이번 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이틀 사이 ‘수만휘’에는 "비슷한 성적권에 갈 수 있는 공학 대학 대신 여대라서 지원했는데 열 받는다", "입학처에 전화했는데 담당자가 아니라며, 학생이 알아서 문의하라며 끊었다"등 동덕여대와 관련된 글이 수십 건 올라오기도 했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항의하며 문을 막고 서 있다. 연합뉴스

남녀공학 전환 논란은 다른 여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전날 광주여대 총학은 입장문을 내고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및 철회를 요구한다”면서 온라인 반대 서명에 동참할 것을 권고했다. 광주여대 역시 올해 4월께 국제학부 등 일부 학과에 한정해 남학생을 모집하는 사안에 대해 재학생 대상 설문을 진행한 사실이 내부에서 재차 거론되며 불안감이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신여대 총학도 이날 대자보를 게시하고 “2025학년도부터 국제학부 한정 외국인 남학생이 입학 가능해졌다”면서 “모집요강 발표 등 일방적인 통보 형태로 주요 정보를 알리지 말라”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성신여대 관계자는 “동덕여대와는 크게 다른 상황”이라면서 “애초에 순수 외국인만 뽑는 학부로, 남녀공학으로 가는 전초전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반대 여론은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이밖에 숙명·덕성여대 등에서도 동덕여대 학생회 측에 기부금을 보내거나 시위에 합류하는 등 반대 움직임이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대에서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이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이원복 전 덕성여대 총장은 취임 당시 "성(性)을 뛰어넘은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남녀공학 대학으로의 전환을 전격 검토했지만 결국 중단됐으며 성신여대 역시 2018년 공학 전환을 언급했다가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과한 바 있다. 현재 전국에서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동덕여대 등 7곳뿐이다.


전문가들은 재정난과 학령인구 감소, 입결 하락 등 여대가 직면한 여러 위기로 인해 일부 대학의 공학 전환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면서도 재학생들과의 충분한 소통 및 의견 수렴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남녀공학 추진 배경에는 학생 수 유지, 남성 비율이 높은 이공학 전공 강화 등 경쟁력 강화가 있었을 것”이라며 “다만 학내 충분한 숙의와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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