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3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 추진 현황’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고가 위주였던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를 개편하면서 발생한 효과를 강조했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2월 기준 5세대 이동통신(5G) 전체 가입자 중 신설된 중저가 요금제를 선택한 이용자는 621만 명”이라며 “이 같은 추세라면 장기적으로는 1400만 명 이상의 국민에게 연간 5300억 원 수준의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작 소비자들은 통신비 절감 효과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 항목 중 통신비 부문을 분석한 결과 2022년 2분기 12만 3000원대였던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 지출은 2년이 지난 올해 2분기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오히려 12만 3989원으로 0.6% 늘었다.
전문가들은 가계통신비를 낮추려면 단순히 요금제를 개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통 3사 과점 체제에서 메기 역할을 할 제4이동통신 설립이 무산된 상황에서 알뜰폰 업계를 활성화하면서 단말기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자급제 도입과 중고 휴대폰 시장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스스로 맞는 요금제를 찾아가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이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10년 만에 폐지를 추진 중인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역시 가격경쟁 촉진이라는 장점 외에도 고령층 소외 등 부작용을 해소할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요금제 개편만으로는 한계=전문가들은 정부가 4만 원대 중후반이던 통신 3사의 5G 요금제 최저 구간을 3만원대로 낮추고 5G 중간 요금제를 신설하도록 한 데 이어 롱텀에볼루션(LTE) 요금제를 가입하거나 LTE 단말기로도 5G 요금제 가입이 가능하도록 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힌 점은 긍정적이지만 통신비 부담을 덜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단말기 제조사로 하여금 30만 원대 중저가 스마트폰을 출시하도록 유도했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연맹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발간한 ‘이동통신 산업·서비스 가이드북 2024’에 따르면 2022~2023년 국내에 출시된 5G 단말기 중 80%는 평균 139만 원 이상의 플래그십 제품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신비에 단말기 가격이 포함돼 있다 보니 통신요금만 낮춘다고 통신비가 낮아질 수는 없다”면서 “결국 단말기 가격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통법 폐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에 정부는 단말기 구입 등 통신 부담 완화를 위해 단통법 폐지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통신사 간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의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단통법 폐지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전면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디지털 소외 계층인 고령층은 정보 취득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알뜰폰 업계도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통신 3사는 보조금을 늘리는 등 마케팅을 강화할 수밖에 없고 비용 할인 혜택이 커져 알뜰폰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 3사에 지불하는 망 사용 비용인 도매대가를 낮춰 이들이 더 싼 요금제를 출시해 ‘무한 경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연내 SK텔레콤 등 통신 업계와 도매대가 인하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13일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 간 회동에서 관련 사안이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4이동통신사 등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지 않는 이상 이통 3사의 경쟁자는 알뜰폰 업계”라며 “이통 3사에 지불하는 망 사용 비용을 낮추거나 보다 많은 사업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경쟁하는 환경을 구성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폰플레이션 억제 방안 필요=단통법 폐지와 별도로 단말기 공급과 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나 여러 통신사 상품을 취급하는 일부 판매점에서는 결합 판매를 허용하는 절충형 완전자급제 등을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폰플레이션 완화와 중고 휴대폰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연내 추진 예정인 ‘중고폰 인증 사업자’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인증 기관이 돼 개인정보 유출 우려 없이 안전한 중고 휴대폰 거래 환경을 구축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교수는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 분야를 분리하면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고 휴대폰이나 삼성전자 갤럭시, 애플 아이폰 외에도 또 다른 외국산 제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