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작게 세상 밖으로 나온 여아가 198일만에 병원 생활을 마치고 건강하게 엄마, 아빠 품에 안겼다.
12일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임신 25주 5일 만인 지난 4월 22일 260g으로 태어난 예랑이가 지난 5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첫 울음조차 희미해 가족과 의료진을 애태웠던 예랑이가 집에 가던 날 몸무게는 3.19kg이었다. 근 7개월의 집중 치료 끝에 10배 넘게 자란 것이다.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숨을 유지하던 예랑이는 스스로 숨을 쉬는 것은 물론, 젖병을 무는 힘도 여느 아기 못지 않다.
예랑이는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찾아온 귀한 생명이다. 예랑이의 존재를 확인한 날이 11월 11일이라 ‘(빼)빼로’라고 불렸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줄 알았던 예랑이는 임신 21주차부터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개인병원을 다니던 예랑이 엄마는 자궁내태아발육지연과 흔히 '임신중독증'이라고 불리는 전자간증(pre-eclampsia) 진단을 받고 국내 한 대학병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됐다.
당시 예랑이 엄마는 혈압이 점차 치솟고 복수까지 차오르는 전형적인 전자간증 증세를 보였다. 전자간증은 임신 중 발생하는 고혈압성 질환이다. 임부와 태아 모두를 위태롭게 하는 대표적인 임신 관련 합병증에 해당한다. 삼성서울병원은 고위험 산모와 태아, 신생아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다학제 진료 기반 모아집중치료센터를 운영해 왔다. 산부인과 오수영 교수, 함수지 임상강사 등으로 구성된 고위험 산모팀은 예랑이 엄마의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마그네슘을 투여하는 등 예랑이의 안전한 출산을 준비했다. 하지만 출산하기에는 예랑이가 너무 작은 탓에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하기까지 의료진들의 고심은 깊었다. 이미 임신 21주차부터 예랑이의 발육이 더뎌진 터라 산모가 입원한지 나흘만인 4월 22일 제왕절개 수술이 진행됐다. 두꺼운 자궁벽을 뚫고 조심스레 꺼낸 예랑이는 당시 집도의의 손바닥 크기에 불과했다.
출생 직후 24시간 집중 관리가 가능한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이후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예랑이는 출생 직후 호흡부전, 패혈성 쇼크가 나타나 기계호흡과 함께 항생제, 승압제, 수혈 등 고강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첫 번째 고비는 예랑이가 태어난지 생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태변으로 장이 막혀 장을 뚫어주는 수술이 필요했지만 예랑이는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작았다. 소아외과에서 매일 예랑이를 살피는 가운데 신생아팀의 양미선, 황지은, 박성현, 이나현 교수가 매일 조금씩 태변을 꺼내가며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예랑이가 신생아중환자실에 온 날부터 줄곧 지정의로서 치료했던 양 교수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고는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모두 예랑이가 첫 변을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렵사리 고비를 넘긴 예랑이는 몰라보게 호전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기를 떼고 자발호흡을 시작했고 몸무게도 조금씩 늘었다. 미숙아에 흔한 망막증도 안과에서 매주 망막검사를 진행하며 관리한 덕분에 큰 합병증 없이 나아졌다. 재활의학과 의료진에게 매일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기운도 세졌다. 의료진은 예랑이에게 병원이 위치한 동 이름을 따 ‘일원동 호랑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열정도 예랑이와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아기와 산모 사이의 애착과 유대감 형성을 돕기 위해 캥거루케어에 공을 들인다. 신상애중환자실 전문간호사들은 예랑이의 작은 몸에 필요한 영양과 약물 주입이 가능하도록 말초삽입형 중심정맥관을 확보하고 습도를 높게 유지하면서도 이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애썼다. 특히 민현기 전문간호사는 임신 합병증으로 엄마의 눈이 잠시 안 보일 때 예랑이에게 먹일 모유 유축을 도왔다. 예랑이 엄마는 출산 후 몸을 추스리고는 매일 병원을 찾아 예랑이의 상태를 살폈다. 건강 문제로 병원을 다녀가기 어려울 때는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의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며 예랑이의 건강을 간절히 기도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2년 1·2차 신생아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결과에 따르면 예랑이보다 좀 더 큰 500g 미만의 신생아도 생존율은 36.8%에 그쳤다. 예랑이처럼 300g 미만으로 태어나면 생존 한계 범위를 벗어난다. 이 경우 생존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장윤실 모아집중치료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예랑이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저체중 미숙아의 희망이 될 아이”라며 “의학적 한계 너머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살릴 더 많은 기회를 찾기 위해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