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단국대 의대 교수)이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내년 초로 예정된 차기 회장 선거까지 약 1개월 반 동안 의협을 이끈다.
박 부회장은 출마 선언 전부터 전공의들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으면서 당선이 유력하게 점쳐졌으며 실제로 비대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당선 직후 “정부가 의료 파탄이라는 시한폭탄을 달아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 운영에서 전공의·의대생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난 11일 출범한 여야의정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13일 선거권이 있는 대의원 244명을 대상으로 오후 3~8시 온라인 전자투표를 진행한 결과 박 부회장이 123표(52.79%)로 과반 이상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번 비대위원장 선거에는 박 부회장 외에도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등 총 4명이 출사표를 낸 바 있다. 황 후보가 71표(30.47%)로 2위에 올랐고 이어 이 후보 35표(15.02%), 주 후보 4표(1.72%) 순이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임현택 전 회장의 탄핵에 따라 내년 1월 초 열리는 차기 회장 선거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그는 출마 의사를 밝힌 후 전공의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으며 일찌감치 당선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전공의 대표 72명은 “정치적 행보가 없으며, 젊은 의사들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며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박단 위원장은 본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당선 축하드린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축하를 건넸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선증을 받은 후 “당선이 기쁘다기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정부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없기에 현 사태가 급속히 해결되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의료파탄이라는 시한폭탄을 멈춰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은 의료 파탄의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앞으로 비대위는 그간 소외된 전공의·의대생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구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젊은 의사들과 적극적 연대활동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는 전날 후보자 설명회에서도 “정부의 독단적 행정으로 인한 의료 파탄이 계속되고 있고 전공의·의대생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비대위 운영에 전공의·의대생 견해가 중시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위원장의 독단”이라며 “앞으로 구성될 비대위에서는 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며 위원 구성은 조금 간결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의정협의체 등 정부와 대화에는 당장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를 가리켜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칼로 베어서라도 가져가려는 부모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장 협의체 참여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현안협의체 2기로 직접 정부와 만나 회의에 참여했는데, 의대 증원 규모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정부가 사실과 다르게 의료계에 불통 이미지를 낙인찍게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번 임 전 회장 탄핵에 이어 의협 비대위원장 선거에서도 그 영향력을 보여줬다. 박단 위원장은 박형욱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의협 대의원회로부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으나, 결과적으로는 판세를 흔드는 역할을 하며 사실상 ‘새로운 실세’로 올라간 셈이다.
박단 비대위원장과 대립해 온 임 전 회장은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의료계 잡음을 다시금 노출했다. 그는 전날 밤 SNS를 재개하며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하냐.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서 모든 권한과 책임 하에 의료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건 본인(박단)이 누누이 얘기해 왔던 ‘2025년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까지 분명히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에서는 폭로전까지 예고하며 “그동안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한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회장이 전화하면 전화도 톡도 텔레그램도 안 받으면서 우리집 불꽃놀이 잘 보인다고 여기자한테는 놀러 오라는 XX난 자식 아주 구역질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박단 비대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이는 이 글은 현재 삭제됐으나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자신의 SNS 계정에 이를 공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노 전 회장은 “이성을 잃은 건가, 아니면 원래 이 수준이었던 것일까”라며 “오죽하면 집행부 임원 중 일부가 탄핵을 막는 것이 옳은지 그냥 탄핵 되도록 놔두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을까”라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