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의 투자바이블] 트럼프 관세와 아시아 통화 약세

■김학주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


1990년대 초반 이후 미국의 순수입은 급증했다. 물건을 스스로 만들기보다 저렴한 물품을 해외에서 사다 쓰는 데 의존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빚이 증가하고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 달러가 계속 빠져나가면 가치가 하락해 패권 통화의 역할을 상실한다. 조 바이든 정권은 고금리 정책을 통해 달러 자산 매수세를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인상도 그 일환일까.


트럼프는 2018년 가전·기계 등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최대 25%까지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물가 인상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중국의 인민폐 가치가 먼저 하락하며 중국 물품이 싸졌고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은 미미했다.


관세 부담으로 인해 중국 수출과 경제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이 선행된 것이다. 더욱이 중국 인민들도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이 예상되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데 익숙하다. 2015년 8월 중국 인민은행이 악화되는 수출을 보호하기 위해 인민폐를 절하시켰을 때도 중국인들은 재산을 대거 해외로 유출시켰다.


트럼프는 지난 선거 유세 과정에서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대해 60% 관세 부과를 주장했다. 그것이 얼마만큼 현실화할지는 모르나 중국 통화를 절하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과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무사할까. 그는 전반적으로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 부과를 언급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중국 소비에 민감하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금리를 내리고 아시아로 돈을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돈을 미국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절하는 추세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 관세 인상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관세 인상을 통한 미국산 제품으로의 대체가 어려운 분야도 있지만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력 있는 업체가 내부에 있다. 바이든은 보조금을 줄 테니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라고 달랬다. 반면 트럼프는 안 들어오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한다.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겼는데 보조금을 줄이면 현지 업체는 부실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 그러면 반도체 생산시설과 기술, 그리고 전문 인력은 미국에 남는다. 그것이 미국이 노리는 부분일 수 있다. 트럼프가 휘두르는 관세 칼날에 하필 한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노출돼 걱정스럽다.


트럼프는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등 신기술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플레를 억제하려는 모습 때문에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도 정치인이므로 단기적인 성과를 보이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잔인함을 숨기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 절하돼 구매력을 상실하면 원자재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즉 아시아의 희생으로 미국의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목에서 자비가 없으니 우리에게 더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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