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100년 쓰는 방안에 대한 준비에 나섰다. 미국은 평균 40년가량인 최초 원전 수명에 20년을 연장해주고 있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추가로 20년을 더 허가받는 원전들이 생겼고 앞으로는 20년을 더 늘려 총 100년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안전한 원전은 계속 운영하는 게 낫다는 뜻으로 이제야 계속운전 기한을 10년에서 20년 수준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내놓은 ‘2050 원자력 에너지 확대 로드맵’은 “미국에서 (계속운전 승인을 받은) 원전 30기는 2035년 이전에, 54기는 2035~2050년 사이에 허가가 만료된다”며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적시에 안전 및 환경 검토를 수행하고 기존 원자로가 80년을 넘어 100년까지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알리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로드맵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28개 주 54개 부지에 94개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대부분 1970~1980년대에 지어졌고 평균 가동 연수는 42년이다. 설계수명은 40년이지만 기본적으로 20년 추가 수명 연장을 받는다. 원전 94기 중 89%인 84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고 두 번 승인(20년+20년)을 받아 총 80년을 돌릴 수 있는 원전도 6기에 달한다. 여기에 20년을 더해 총 100년을 가동하겠다는 얘기다.
국내 원전 업계에서는 미 정부의 원전 수명 연장 논의가 부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백원필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원전 가동을 100년까지 연장하겠다는 건 성능과 안전성만 확보되면 기존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미국적인 실용주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로드맵에서 원전 사용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 신규 용량 200GW를 확보해 원자력 에너지를 3배 확대할 방침이다. 신규 원전 건설과 원전 재가동, 기존 시설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지난해 100.6GW 수준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300GW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2035년까지 35GW의 신규 용량을 확보, 이후 5년 동안 매년 15GW를 추가 확보하는 게 목표다. 원자력 증량을 위한 주요 권고 사항으로 대형 원자로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라이선스 발급에 속도를 내고 장기적으로 세금을 지원해주는 조치 등도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기간에 신규 원전 건설을 언급해와 차기 행정부에서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술력이 부족했던 과거 원전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더 튼튼하게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면서 “80년이 된 원전도 안전 규제 기관이 문제없다고 판단하면 100년까지 가동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국내 원전 다수를 차지하는 경수 원전의 설계수명은 40년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 후유증에 고리 2호기는 지난해 4월 설계수명이 다해 가동을 멈춘 채 연장 심사를 받고 있고 고리 3호기도 지난달 운영 허가가 만료돼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1980년대부터 운전을 시작한 원전들은 이미 40년을 채웠거나 40년이 돼가고 있다. 2030년까지 설계수명을 다해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하는 원전만 10기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최근에서야 대통령실 주도로 10년인 계속운전 기간을 선진국 수준인 20년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요 원전 보유국들은 탄소 배출 감축과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폭증에 ‘계속운전’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한국도 수명 연장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AI·데이터센터·전기차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전의 허가 기간을 기존 40년 안팎에서 70~80년으로 늘리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운영이 중단된 고리 2·3호기를 포함해 원전 10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지 못하고 운영이 모두 중단될 경우 향후 10년간 약 107조 6000억 원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 발전 공백을 상대적으로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로 메꾸는 것을 가정한 결과다. 백 전 회장은 “계속운전 연장 단위를 10년으로 하면 한수원 입장에서도 안전성을 증진시키는 유인이 떨어질 것”이라며 “하루속히 20년 단위로 늘리는 것이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이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