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1당의 수장이자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사법 리스크’의 첫 고비조차 넘지 못하면서 그의 정치 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봉착했다. 야권에서 독보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이 대표의 유죄 선고는 정치권에도 일대 변혁을 몰고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 중심의 민주당 ‘일극체제’는 균열이 불가피해졌고 유죄 확정시 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야당 잠룡들의 정치 보폭은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 직후 긴급 최고위를 열고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권의 정적 죽이기에 화답한 정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항소심에서 사법 정의를 바로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유죄가 나오더라도 벌금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징역형이 나오면서 민주당은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금까지는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정치 검찰’의 횡포로 대응해왔지만 법원의 유죄 판결로 이 같은 공세가 더 이상 공감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이 유죄가 나온 상황에서 25일 예정된 위증교사 혐의 판결 전망은 더욱 어두운 상황이다. 이에 이 대표로서는 자신을 둘러싼 범죄 혐의 중 가장 먼저 대법원 선고가 나올 선거법 재판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대표 측은 ‘재판 시간 끌기’에 온 힘을 쏟으면서 형량을 줄이기 위한 법리 다툼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내년 중 2심 판결은 물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올 가능성이 높아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갈수록 약화할 가능성이 높고 자칫 재판 지연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 지지율도 꺾일 수 있다.
민주당은 일단 “1심 선고 결과와 무관하게 이재명 체제에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법 리스크’ 꼬리표에도 지난 전당대회에서 더 강력한 ‘일극체제’ 구축에 성공한 것에 대한 학습효과다. 이 대표도 선고 이후 “기본적인 사실 인정부터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오늘 이 장면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라며 최종심까지 정상적인 정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력 대권 후보를 잃을 가능성에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대응 전략을 놓고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은 물론 의원직 상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권이 주장하는 ‘이재명 집권용 정권 퇴진 운동’이라는 프레임은 한층 힘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 대표가 대정부 공격에도 앞장서기 어려워 ‘장외 투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유죄 선고로 야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비명계’ 중량급 정치인들의 행보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총선과 전대를 거치면서 당이 친명 중심으로 재편된 후 대외적인 정치 활동을 자제해왔지만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이들이 행동 반경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신(新) 3김’ 중 한 명인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최근 광폭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특검을 거부한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낸 데 이어 유럽 출장길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비공개 회동을 갖기도 했다. 김경수 전 지사는 내년 초 귀국할 예정이지만 일정을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강연 정치’ 등을 통해 존재감을 높여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