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2기를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무역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위안화 약세를 막고 달러 패권의 입지를 좁히기 위해 미국 국채 보유량을 꾸준히 줄여왔으며 자국이 우위에 서 있는 주요 광물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이 대(對)중국 제재 기관을 늘리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독일·일본·호주 등에 구애를 펼치며 ‘트럼프 2.0 시대’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미중 무역 전쟁이 재점화할 것에 대비해 중국이 강력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트럼프 1기가 출범한 2016년 이후 대대적인 관세 인상, 투자 통제 강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로 중국이 당황했으나 지난 8년간 다양한 무기로 장벽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베이징대 글로벌 협력·이해연구소의 왕둥 책임은 “중국은 당연히 트럼프 당선인과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며 “하지만 2018년처럼 대화를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싸워야 한다면 중국은 단호하게 권익 수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비해 힘을 축적하고 있으며 가장 파괴적인 조치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전부 혹은 대부분을 처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미국과의 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감소 추세가 두드러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2017년 이후 3분의 1 이상 줄어든 7340억 달러 수준이다.
중국은 트럼프 2기에 본격화할 관세 전쟁에 대비해서도 위안화 약세를 감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위안화가 저렴해지면 중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잠재적으로 관세의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미중 무역 분쟁이 심화된 후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을 넘는 상황을 개의치 않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첫 무역 전쟁이 발생한 2018~2019년 위안화는 달러 대비 11.5% 하락했지만 관세 인상의 약 3분의 2를 상쇄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달러당 7.24위안 수준인 위안화 환율이 내년에는 7.3~7.8위안까지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은 ‘자원 무기화’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주요 희귀 광물의 매장량이 풍부한 중국은 수출을 통제하는 보복 조치로 맞서왔다. 지난해 8월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했고 이후에도 흑연·안티몬 등을 연이어 수출 관리 대상 품목에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의 무역 전쟁 이후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자 중국도 자국의 발전을 해치는 개인이나 회사를 대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률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중국이 제재한 미국 기업(개인 포함) 수는 2021년 11개에서 올해 벌써 74개로 급증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 간의 약한 고리를 적극 공략하는 전략도 활용하고 있다. 일본·인도 등과 긴장 완화에 나서며 외교적 마찰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BCA리서치의 맷 거트켄 수석전략가는 “무역 전쟁의 다음 단계에서 중국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미국 동맹국들에 미국의 정책이 무모하고 평화와 번영을 해친다고 설득하는 것과 함께 유라시아에서 동맹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독일·일본·호주 등 미국의 우방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행보가 명백한 신호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