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등 인근 개발 지연 불가피" 세계유산영향평가 기준 논란

토지 면적 30만㎡ 이상 사업 등
적용대상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
행정 절차땐 금융비용도 불어나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법제화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이달부터 시행된 가운데 구체적인 적용 지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근의 개발이 유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 시행자에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실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서울시와 인천시는 조만간 국가유산청에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보완을 요청할 계획이다. 시행령 개정안은 11월부터 국가유산청장의 판단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근 개발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하게 되면서 마련됐다. 지난달 입법예고를 마치고 법제처 심의를 앞두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종묘와 창덕궁·수원화성·조선왕릉 등 16개의 세계유산이 있으며 조선왕릉은 40기 중 37기가 수도권에 위치한다.


서울시와 인천시는 개정안에 규정된 영향평가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보고 있다. 개정안은 △토지 면적이 30만 ㎡ 이상인 사업 △연면적 20만 ㎡ 이상이거나 21층 이상인 건물 신·증축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에 거리 규정이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종묘와 창덕궁 인근 개발은 모두 영향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적용 대상 축소나 지자체에도 실시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수정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로 인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유산청이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실시부터 검토까지 약 1년이 걸린다. 실제로 전남 해남 대흥사는 사찰 내에 호국대전을 건축하던 중 2018년 대흥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평가 이후 조치 시행과 행정절차를 밟는 데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이 때문에 금융비용이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유산청은 아직 시행령이 실시되지 않은 만큼 관계기관 및 부처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세계유산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시행령을 짰으며 현재도 대상 사업의 구체적 범위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네스코는 2015년부터 당사국에 세계유산영향평가 법제화를 권고했으며 현재 영국·호주·캐나다·일본 등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제도화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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