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는 30대 여성이 불법추심으로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추심을 뿌리뽑으라”고 말하면서 강력한 대책을 주문했다. 실제 불법사금융 피해가 지난해보다 58% 증가하는 등 범죄 빈도도 증가하고 그 심각성도 커져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대 싱글맘 A 씨의 죽음은 지난 9월 전북 전주의 펜션에서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숨진 A 씨는 6살 딸을 향해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며 미안함과 사랑을 전하는 한편, 함께 발견된 노트에는 ‘90만 원, 40만 원’ 등 사채업자에게 빌린 금액을 적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빌린 금액은 처음엔 수십만 원 수준이었으나 수천%에 달하는 연이율로 인해 천만 원 수준까지 불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의 주변에서는 “한 시간 안에 못 갚으면 10만 원씩 이자를 더 내라”라는 증언이 쏟아졌다.
문제는 살인적인 이자뿐 아니라 불법추심에도 있었다. 사채업자 일당이 지인과 가족을 향해서도 광범위한 협박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A 씨 가족의 사진을 유포하거나 유치원 집 주소를 언급하며 협박하고,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도 찾아가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나치게 빠르게 늘어나는 이자와 견디기 힘든 추심은 A 씨를 심리적으로 내몰았다.
A 씨의 죽음 이후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해당 사건과 관련한 사채업자들을 대부업법 위반·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채업자들은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씨가 남긴 차용증에는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것으로 보이는 금액이 적혀 있었는데, 경찰은 A 씨가 빌린 돈과 이자의 정확한 액수도 특정하기 위해 수사 중이다.
현재 법이 규정하는 최고 이자율은 연 20%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의 경우 법이 허용하는 이자율이 초과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부업법 위반, 협박 등 추심 제한사항을 어겼기 때문에 채권추심법 위반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채권추심자는 채권 추심과 관련해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폭행·협박·체포 또는 감금하거나 위계나 위력행위를 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해진다.
윤 대통령이 12일 A 씨의 보도를 접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사건 해결을 촉구하면서 불법 사금융 문제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경기 악화로 인해 불법 사금융은 최근 들어 더욱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경찰에 따르면 올해 1~10월 불법 사금융으로 인한 피해는 2789건 발생해 전년 동기보다 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부업법 위반 혐의의 경우 지난해 977건이 발생해 2022년 914건보다 다소 증가했다.
특히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자주 오가는 유흥업소나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 등을 중심으로 ‘편리한 대출’을 내세우는 불법 사채업자들이 이 같은 피해를 키운다. X(구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소액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게시물도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6월 발표한 ‘저신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는 최대 9만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응답자의 77.7%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하기 위해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다고 답변했다.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거절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악성 불법추심이나 살인적 이자율을 적용하는 불법 사금융이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추심 방법에는 최신 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 형태의 성착취도 이뤄지고 있었다. 경찰이 공개한 주요 검거사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2월 피해자 212명에게 연이율 5214%를 적용해 5억 원을 빌려주고 연체 시에 피해자 얼굴과 타인 나체사진을 합성해 피해자 지인에게 유포한 불법대부업 조직 15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 연이율 2250%의 불법 고금리 대부업 조직의 경우 피해자가 250만 원을 대출하면 5일 뒤에 원금을 훌쩍 뛰어넘는 320만 원을 상환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22년 11월부터 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추진 중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올해 11월 1일부터 내년 10월 31일까지 특별 단속을 1년간 연장한다. 또 전국 시도경찰청과 경찰서에 ‘불법사금융 전담수사팀’을 설치해 수사 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A 씨가 숨진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겪었을 힘들고 괴로웠을 상황에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전국적 특별단속을 통해 불법사금융을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불법 채권추심 범죄에 엄정히 대응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라”는 메시지를 전국 검찰에 내리고 지난 7월 불법사금융범죄 사건처리기준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청했다. 폭행·협박이 뒤따르는 추심 행위의 경우에는 스토킹 처벌법상 잠정 조치를 청구하고 올해 1월 시행된 위치추적 잠정조치 제도도 활용한다.
다만 서민들의 대출 접근성이 낮아지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인 만큼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불법사금융 근절 정책 현황 및 시사점’을 통해 “대출중개사이트 이용자 등에 대한 금융지원은 고용지원과 연계해 소득 창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불법사금융에 대한 수요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취업과 금융지원의 연계 지원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