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재미 본 동남아, 트럼프 당선에 반색 속 우려 확산

과거 미중 갈등 반사이익 기대하면서도
전방위 규제에 오히려 가시밭길 전망도
미국과의 무역 흑자·적자 여부에 갈릴듯
중국,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나서

16일(현지 시각) 페루 리마 국제컨벤션센터에서 3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윤석열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존 리 홍콩 행정장관, 의장국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뒷줄 오른쪽부터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 주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린신이 대만 총통부 자정,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속속 차기 내각 인사들을 지명하며 대외 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이 다가오는 트럼프 2기의 유불리를 계산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갈등에 따른 반사 이익을 이번에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전방위적 규제에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란 우려도 거세지고 있어서다.


18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과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전반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이들 국가는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무역 갈등 속 글로벌 기업들이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채택하며 공급망 다각화의 수혜를 본 곳들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집권 시 중국에 최고 60%의 관세를 통해 공급망 디커플링(분리)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미중 갈등이 이전보다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은 트럼프 1기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공장 이전에 따른 투자 증가 등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피차이 나립타판 태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6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태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친기업적이고,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면서 양국이 태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며 반색했다. '대나무 외교'로 불리는 중립적인 실리 외교를 펼쳐온 태국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무기를 수입하고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피차이 장관은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함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새로운 투자 인센티브를 마련할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태국과 달리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기업이 동남아, 멕시코 등 제3국을 우회해 미국에 수출하는 행위를 문제삼겠다고 천명하고 외국산 수입품 전반에 10~20%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싱가포르 국영방송인 CNA도 최근 연일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싱가포르가 입게 될 타격을 다뤘다. 지난 7일 CNA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 부과 위협과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지역에 지역에 충격파를 일으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전문가인 S. 라자랏남 국제대학원(RSIS)의 아드리안 앙 박사는 “트럼프 당선인의 중국에 대한 매파적 입장은 중국 투자가 많은 국가와 기업도 비슷한 대우를 받고 무역 제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동남아 국가들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미국이 이러한 공급망을 면밀히 조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접근 방식에 따라 해당 국가의 대미 무역 흑자·적자 여부에 따라 관세 정책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처럼 대미 무역흑자가 큰 국가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더욱 강한 접근 방식을 취할 수 있어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올해 첫 8개월 동안 미국은 베트남에는 770억 달러(105조7364억원), 말레이시아에는 140억 달러(19조2304억원)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트럼프 당선자 집권으로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강화하면서 2028년 베트남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예측했을 정도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큰 타격은 없겠지만 트럼프 1기와 같은 수혜를 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네시아는 생산량의 절반이상이 내수로 소비되고 잇고 지난 10년간 평균 약 5%의 성장률을 기록해왔다”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타격을 덜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혜택을 받는 업종은 주로 전자제품 제조업인데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공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큰 수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같은 관세 정책을 협상 카드로 삼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공약에 불안해하는 동남아국가들을 끌어 안으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을 방문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나 양국이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틀 뒤인 9일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신임 대통령과도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


관영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프라보워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개발도상국, 신흥국가 및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구성원으로 평화·협력·포용·통합을 핵심으로 하는 아시아의 가치를 공동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을 겨냥해 "(중국은)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반대하면서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 및 포괄적이고도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촉진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유지할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7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인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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