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도 ‘아메리카 퍼스트’…中 가상자산 금지정책 뒤집나

미중 패권경쟁 새 전선 급부상
디지털산업주도·달러지배 강화 포석
국가간 가상자산 확보·육성 경쟁 가능성
"中 2년내 가상자산 금지 기조 전환” 전망도
비트코인 가치 상승시 세계 국부 판도 전환
미국 외교 전략의 예상치 못한 변수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올해 7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7월 27일(현지 시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테네시주에서 열린 비트코인 행사에 참석해 “미국을 세계의 가상자산 수도이자 비트코인 슈퍼 파워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되자 비트코인 가격은 대선 직전 6만 7000달러대에서 13일 9만 3000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비트코인이 금융 주류 시장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몫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의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주요국 정부가 가상자산을 국가 주권의 수준에서 다루는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것”이라며 “비트코인 투자가 활성화 수준을 넘어 미국 정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하는 시스템의 변화를 초래하고,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가 언급한 변화는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상자산 패권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비트코인 정책이 미국 국채 안정과 달러 지배력 확대 등 ‘미국 우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만큼 비우호 국가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의 가상자산 공약의 핵심은 비트코인을 금과 같은 국가 보유 자산으로 지정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보유한 21만 개의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전략보유고의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이 같은 공약에 발맞춰 5년간 100만 개의 비트코인을 구매해 20년간 보유한다는 내용의 비트코인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디지털 금융 산업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월가에서는 비트코인 준비금 정책이 산업 규제 완화와 병행되면 디지털 금융과 관련된 채굴, 에너지 산업 등 연관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밴에크의 디지털자산연구부문장인 메슈 시겔은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을 통해 미국은 에너지 생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분야에서 동시다발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정부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여 국채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루미스 의원은 비트코인 전략 보유를 통해 2045년까지 미국 국가 부채의 45% 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국가준비금으로 보유하면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하고 정부 자산이 늘어나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에 부채비율이 널뛰는 부작용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법안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소속 로 카나 하원의원은 “우리는 비트코인이 준비자산에 포함되는 데 개방적”이라며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할 잠재력은 물론 미국이 세계 금융의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은행(IB) 캔터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차기 재무장관으로도 거론되는 하워드 러트닉이 가상자산 친화론자라는 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이 속도를 높일 동력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 달러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스테이블코인 상용화가 필수”라는 주장을 트럼프에게 펼쳐 해당 공약을 이끌어낸 인물로 꼽힌다. 달러 가격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를 바탕으로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할수록 달러의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역시 “대부분의 탈중앙화금융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고 토큰의 시장가치 중 99%는 달러 가치에 연동돼 있다”며 “탈중앙화금융이 확대될수록 달러의 지배적 역할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가상자산을 강화할수록 다른 국가의 시장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대표는 “미국이 비트코인 전략 비축에 나서는 것은 다른 모든 국가들을 강제로 (비트코인 비축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21년부터 가상자산 금지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이 해당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글로벌 가상자산 투자 업체인 해시키그룹의 샤오펑 CEO는 “미국이 가상자산 정책을 촉진한다면 이는 중국이 기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중국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전 위원인 황이핑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는 “가상자산을 금지한 중국의 조치는 금융 시스템에 매우 가치 있는 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일”이라며 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이미 홍콩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홍콩 입법회 의원인 조니 응은 “비트코인을 국가 또는 지역의 공식 준비금으로 비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육성할수록 비트코인을 주요 자금원으로 삼는 북한이나 하마스 등 적대 국가 및 조직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티머시 마사드 수석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은행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달러화 결제 수단을 제공한다”며 “금융 배관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정세의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슈 파인스 비트코인정책연구소 국가안보연구원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 비트코인 도입 초기 단계인 엘살바도르나 싱가포르, 걸프만 국가 같은 주변국들의 국부가 상대적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영향력 역시 커질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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