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美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7월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200년 가까운 정당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보수당은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어준 채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독일 집권연합은 지지율 추락으로 붕괴했고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속한 정당도 선거에서 참패했다. 한국에서는 총선을 통해 거대 야당이 탄생했고 1955년 이후 정권을 거의 독점해온 일본 자민당은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렇게 보면 현임 행정부를 대표해 대선에 나섰던 카멀라 해리스가 완패한 것은 이미 예정된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리스는 추세를 뒤바꿀 수 있었다. 미국 경제는 경쟁국들을 멀찍이 따돌린 채 독주를 거듭하고 있다. 취업률은 대단히 양호하고, 임금이 오른 반면 물가는 떨어지고, 생산성은 허공으로 치솟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기 많은 강점을 지닌 정치인이지만 약점도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2022년 1월 마르켓 로스쿨이 실시한 양당 대선후보 일대일 가상대결 조사에서 조 바이든은 43%의 지지를 받아 트럼프에 10% 포인트 앞섰다. 이어 연방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어지자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신통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MAGA후보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이즈음 나온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호감도는 31%로 쪼그라든 반면 비호감도는 60%를 웃돌았다. 공화당은 그에게 실망했다. 이 시점에 트럼프는 2018년 하원을 잃고 2020년 선거에서 상원과 백악관을 빼앗긴데 이어 2022년 중간선거에서 역대급 졸전을 벌인 공화당을 이끌고 있었다. 2022년 12월 공화당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트럼프를 상대로 넉넉한 우세를 기록했다.


바로 이 때가 트럼프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민주당의 기세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시간은 거기서 끝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해리스는 직접투표 득표수에서도 트럼프에게 밀렸다.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직접투표에서 뒤진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잡지 못한 것이 민주당의 유일한 패인은 아니다. 반대 여론을 들끓게 하고 지지기반의 축소를 초래한 민주당의 다른 실착도 적지 않다.


첫 번째 실수는 이민 시스템 붕괴와 국경 혼란을 민주당 행정부가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해받는 소수의 개인을 위해 마련한 난민시스템은 수 백만 명의 미국 입국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국경폐쇄를 요구하는 시위자들을 냉혈한, 혹은 인종주의자로 낙인찍었다. 그들은 불과 몇 년 사이 미국민의 여론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이민축소를 원하는 미국인은 전체의 28%이었지만 2024년에는 55%로 늘어났다.


두 번째 실수는 트럼프를 벌주기 위해 지나치게 법을 오용했다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앨빈 브래그 뉴욕 지방 검사장이 기소한 ‘입막음 돈’ 케이스였다. 한때 브래그 검사장조차 기소 여부에 희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좌파 인사들로부터 그대로 진행하라는 심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주 선거개입을 비롯한 일부 기소 사건은 적법했다. 그러나 기소 건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트럼프를 잡기 위해 사법시스템을 정치무기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법체계의 남용은 트럼프를 실패자에서 피해자로 바꾸어 놓았고 기소 건수가 늘어날수록 캠페인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지지율도 더욱 단단해졌다.


마지막 실수는 파장이 컸다. 좌파의 정체성 정치가 대세를 이루면서 민주당은 온갖 종류의 다양성과 평등 및 포용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이로 인해 주류에 속한 많은 유권자들을 소외시켰다. 민주당은 성중립적인 라티넥스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친 라티노 행세를 하지만 정작 라티노들은 그런 용어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트럼프의 가장 효과적인 광고중 하나는 “카멀라는 그들을 지지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을 지지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끝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간단한 교훈은 진보주의자들은 진보주의적 수단으로는, 그것이 제아무리 좋더라도 진보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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