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하루] 대만인의 아픔, 2·28 사건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TSMC를 비롯해 세계적인 하이테크 기업을 다수 보유한 대만의 역사는 우리와 닮은 부분이 많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제주 ‘4·3 사건’이 발생했던 1947년, 대만에서는 2월 28일 ‘2·28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시 톈마(天馬) 찻집 앞에서 당시 국민정부의 전매 독점품인 담배를 허가받지 않고 판매하던 여성 린장마이(林江邁)를 폭력적으로 단속한 일에서 시작됐다.


이를 단속하던 전매국의 단속원들이 린장마이를 구타하자 그 모습을 본 시민이 달려들어 항의했고 단속원이 달아나면서 총을 발사해 시민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시민들이 격분했다. 2월 28일 타이베이 시민들은 장관 관공서 앞에 모여 해당 단속원을 내놓고 전매국을 해체하라는 시위를 했다. 경비병들이 시위자들을 향해 총을 발포하자 분노한 시민들은 중산공원(지금의 2·28 평화기념공원)에 모여 공원 내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해 대만 전역에 이 사건을 알렸다.


경비총사령부는 대만에 임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장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시민에게 발포를 시작했다. 당시 대만 행정장관 천이(陳儀)는 이 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시민들에 대한 강경 진압을 이어갔다. 대륙의 장제스 역시 담화를 통해 이 사건의 배후에 중국공산당의 선동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5월 15일 계엄령이 해제되고 마을 토벌도 일단락됐지만 사건에 대한 공개적인 조사와 반성은 시행되지 않았다. 더구나 1949년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거점을 옮긴 후 계엄 통치가 시작되자 2·28 사건은 계엄이 해제되는 1980년대 말까지 38년이란 긴 세월 동안 금기의 사건으로 덮여버렸다.


2·28 사건은 담배 한 개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적 불평등, 본성인(本省人)에 대한 외성인(外省人)들의 착취, 일본에 버금가는 국민당 정부의 착취와 차별 등 다양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였다. 지금까지 2·28 사건은 대만 역사의 뼈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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