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088350)이 국내 보험사 최초로 미국 증권사인 ‘벨로시티(Velocity Clearing, LLC)’ 지분 75% 인수에 나선 것은 한화금융이 글로벌 종합금융그룹으로 커 나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에 진출하는 한편 한국과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기존 글로벌 네트워크를 미국으로 확장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화생명의 한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 최초로 미국 증권사를 인수함으로써 미국에서 직접 금융 상품을 소싱하고 판매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인수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사진) 한화생명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은 최고글로벌책임자(CGO)로 인도네시아 진출 등 한화금융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다.
20일 한화생명에 따르면 이번에 인수한 벨로시티는 2003년 뉴저지에서 설립돼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반적인 리테일 증권사가 아니라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서비스를 전개하는 회사다. 청산·결제 서비스, 주식 대차거래,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청산(clearing) 서비스는 미국 3300개 증권사 중 벨로시티를 포함해 약 80개 업체만이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다른 금융기관이나 증권 브로커를 대신해 매매거래의 채권·채무를 확정해주는 기능으로, 여러 규제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벨로시티는 자체 정보기술(IT) 역량과 미국 내 네트워크와 정보력, 우수한 인력을 보유해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한국과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미국 상장주식 중개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의 이번 벨로시티 인수의 핵심 목표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이어진 기존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화생명이 미국에 직접 진출하는 게 글로벌 금융그룹 도약에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생명보험 시장을 넘어 수익을 다변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한화금융의 해외 법인,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인프라에 벨로시티를 더해 미국에서 다양한 투자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장기적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며 “기존 해외 금융 사업과의 시너지도 극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벨로시티가 가진 대체투자 분야에서의 강점을 활용해 전통적으로 기관에만 제공되던 다양한 투자 기회를 한화금융의 글로벌 개인 고객들에게도 제공함으로써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한미 양국 금융 당국의 인수 허가로 인수합병(M&A)이 완료된 후에도 벨로시티의 기존 경영진과 계속 협력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회사를 지속 성장시켜온 기존 경영진과 협력해 인수 이후 회사를 조기에 안정시키고 핵심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직접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국내 생보 시장이 정체한 가운데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열고 있다. 이번 인수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실제 한화생명은 2008년 베트남 진출 이후 2023년 누적 흑자 전환을 기록해 국내 보험사가 단독 출자해 설립한 해외 법인 중 최초로 본사에 배당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 4월에는 인도네시아의 노부은행(Nobu Bank)에 지분(40.0%)을 투자하며 국내 보험사 중 처음으로 해외 은행업에 진출, 글로벌 종합금융그룹으로 가는 다리를 놓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정체 상태에 직면한 국내 생보 시장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간 성장 시장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고객 확장 전략을 폈다”면서 “앞으로 미국에서는 우수한 투자 기회와 인재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해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