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목재 구조물은 쇠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꾀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한국 전통 건축의 짜맞춤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머리카락 두께의 첨단 세라믹 미세 입자를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이 선보였다. 이 기술은 초소형 전자공학, 항공·우주, 에너지, 의료,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겸 산업처장은 19일 ‘월드푸드테크포럼 2024’가 열린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통 건축 기법을 활용해 복잡성과 해상도·정밀도가 뛰어난 세라믹 미세 입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마이크로플루딕 칩 제작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미세 입자는 0.1~100㎛(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크기로 일반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지만 복잡하고 정밀한 모양새를 보인다. 10개의 톱니가 있는 기어 모양으로 모서리가 각진 삼각형과 유사하다. 초소형 전자공학이나 우주·첨단바이오 등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을 견인할 요소 기술로 주목을 끈다.
그는 “사면체 형태의 산화지르코늄(ZrO₂) 미세 입자는 테라헤르츠 방출기와 수신기의 성능과 기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며 “보안, 의료 진단, 제조 품질 관리와 같은 이미지 처리에 활용된다”고 말했다. 팔면체 형태의 이산화규소(SiO₂) 미세 입자는 재료의 강도와 인성을 강화할 수 있어 기계 구동에 필수적으로 이용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산업 현장에서는 재료 특성과 미세 입자의 작은 크기 때문에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불투명 미세 입자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마이크로플루딕 칩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플라스틱 기판을 정밀하게 여러 조각으로 성형, 절단한 뒤 각 조각들이 상호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정교하게 조립해 속이 빈 채널을 만든다. 이때 칩 조각들은 서로 정확하게 정렬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맞물린다. 그 뒤 이 조각들을 파이프 모양의 몰드로 만들고 폴리카보네이트 클램프로 고정함으로써 구조를 유지한다. 이어 특수한 고분자 용액과 세라믹 나노 입자를 칩에 주입해 완벽하게 혼합되도록 한다. 이 혼합물을 가열하고 경화·가교 과정을 거쳐 고체 물질을 형성한 뒤 소시지를 만드는 것처럼 칩을 압출해 원하는 두께로 절단한다. 해외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에 대해 “역사에서 얻은 지혜와 영감으로 학문을 융합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현대 과학으로 승화시켰다(마르틴 푸메라 체코 브르노공대 화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난양공대 변환경제연구센터 소장인 조 교수는 “1000년 이상 사용된 짜맞춤 건축 기법을 재료·화학공학과 결합해 안정적이고 견고한 미세 입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며 “마이크로플루딕 칩 생산 속도를 최대 10배 이상 높이고 세라믹 미세 입자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