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불의의 사고로 교직원이 사망해 유족들이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상속받는 경우 유족연금을 전체 채권에서 먼저 공제한 뒤 지급하는 이른바 '공제 후 상속' 방식의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유족연금을 받지 못한 상속인들의 손해 배상 권리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채권을 먼저 상속하고 유족연금을 받은 자의 몫은 상속분에서 따로 공제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21일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하는 순서와 그 인적 범위가 문제된 사건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퇴직연금 일시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하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대학교수였던 망인은 201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에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가해자 측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배우자만 유족연금을 수급했기 때문에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도 해당 몫 만을 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은 유족연금을 지급받는 유족과 공동상속인을 달리 정하고 있다. 따라서 상속인이더라도 유족연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체 퇴직연금 손해배상 채권액에서 유족연금액을 모두 제외하고 상속 비율에 따라 나누는 '공제 후 상속'과 먼저 손해배상 채권액을 분배하고 유족연금 만큼을 제외하는 '상속 후 공제'에 따른 계산 금액이 달라지게 된다.
재판의 쟁점은 유족연금을 공제하는 순서와 그 범위에 관한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994년 5월 10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제외한 뒤 나머지 퇴직연금 손해배상 채권을 나누는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인정했다.
해당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퇴직연금일시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우선 상속분 비율에 따라 상속하고 이후 공제하는 상속 후 공제 방식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후 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제 후 상속 방식을 따랐다. 망인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하면 그 후 원고들에게 상속되는 금액이 남지 않아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해 '상속 후 공제'에 따라 신속하게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 대법원장은 "(유족연금)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은 상속받은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지급받더라도 유족연금을 이중으로 지급받는 것이라 볼 수 없다"라며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되고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된다"고 지적했다.
기존 판례에 따라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하면 이를 받지 못한 상속인들의 손해배상채권 전부 또는 일부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며,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으로 가해자를 면책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어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피해자인 망인의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하고, 수급권자가 상속분을 초과하여 직무상유족연금 일부를 중첩하여 받더라도 이는 생활보장적 성격으로 지급되는 것으로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임동한 동인 대변인 변호사는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 수급권자와 손해배상 청구권자가 다른 경우 먼저 배상채권을 상속한 뒤 유족급여를 받은 자만 공제하는 상속 후 공제 방식으로 변경했다"라며 "손해배상 청구권의 보장 범위를 확대해 망인을 부양한 가족이 입은 손해를 빠르게 배상하기 위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