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있으면 도수치료비 2배 뻥튀기…“비급여 부르는게 값”

[눈먼 돈 된 실손보험]
<중>무너진 직업윤리
한방병원, 양의 고용해 도수처방
실제론 미용시술·공진단 등 제공
올 상반기 보험금 지급 7% 증가
최근엔 발달지연 분야 청구 급증
올 지급금액 전년보다 8.2% '쑥'


부산의 한 한의원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양의사를 고용했지만 사실 이렇다 할 진료를 하지 않는다. 한의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도수 치료 처방을 내주기 위해 고용한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한의원이 실제 도수 치료를 한 것도 아니다. 환자들에게 도수 치료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해 실손보험을 청구하게 하는 대신 미용 시술을 해주거나 보약의 한 종류인 공진단을 줬다. 금융감독원과 부산경찰청이 올 6월 한의사·협진의·간호사·환자 등 100여 명을 검거한 사건이다.


도수 치료는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통증의학과 등을 가야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즘은 한방병원도 도수 치료를 한다. 한방병원 정통 치료인 추나요법이 있는데도 굳이 도수 치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실손 보험 때문이다. 한방병원에서는 1세대 실손 보험만 실손 청구를 할 수 있지만 도수 치료는 1~4세대 실손 모두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의료법상 도수 치료를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한방병원에서는 의대를 갓 졸업한 의사나 은퇴 이후 취업이 어려운 고령 의사를 ‘협진 의사’로 고용해 도수 치료를 처방하고 있다.


한방병원의 도수 치료가 늘면서 실손 보험금 지급도 급증세다. 지난해 한방병원 환자에게 지급된 실손 보험금은 전년 대비 16.1% 늘었고 올 상반기에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7.1%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실손 보험금 증가율이 10.8%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방병원의 증가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다. 한·양방 협진으로 도수 치료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게 보험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한 달간 한방병원에서 이뤄진 비급여 진료 항목 중 도수 치료 진료비는 122억 원으로 2위인 약침술(33억 원)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도수 치료가 만병통치 의료술도 아닐 텐데 세계에서 한국처럼 도수 치료 많이 받는 나라가 있겠냐”며 “실손 보험이 한국을 도수 치료 공화국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도수 치료, 체외 충격파 치료, 재생 치료(인대 주사) 등 ‘비급여 물리치료’는 다년간 실손 지급 보험금 상위권에 올라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13.4% 증가했고 올 상반기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7% 늘었다.


비급여 물리치료에 대한 적당한 시장 가격이 없다 보니 병원이 장사하듯 치료 플랜을 짜주기도 한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병·의원에서 환자에게 실손 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본 뒤 보험이 있으면 회당 20만 원, 없으면 10만 원의 치료비를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가입한 실손 보험의 유형(1~4세대)을 파악해 청구 한도를 넘지 않도록 물리치료 플랜을 짜주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비급여 물리치료를 한 것으로 허위 진료 기록을 발급하고 실제로는 피부미용 시술을 하기도 한다.


최근 실손 보험 보장 분야에서 빠르게 청구가 느는 분야는 발달 지연이다. 지난해 지급 보험금이 전년 대비 28.9% 증가했고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8.2% 늘었다. 자녀가 발달 지연 치료를 받았다면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실제로는 음악·미술·스포츠 치료 등을 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실제 경기도의 한 아동심리발달센터는 “발달 지연 치료로 실손 청구가 가능하다”고 학부모들을 유혹해 음악 치료사와 미술 치료사가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또 다른 한 의원은 같은 수법으로 유치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교 준비반’을 열어 사회성과 신체 발달 명목으로 스포츠 활동을 시키기도 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사들의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졌고 환자들 역시 실손 보험금 부정 청구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병원이 권하면 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실손 보험료가 올라 선의의 가입자는 물론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