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효과’에 올라탄 가상자산 비트코인이 10만 달러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는 데다 위험 헤지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금보다 낫다는 인식까지 퍼지면서 파죽지세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증시 투자 대기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대거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2일 오후 4시 기준 비트코인은 개당 9만 9000달러 선에 거래됐다. 24시간 전보다는 1.7%, 7일 전 대비로는 12.5% 오른 수준으로 10만 달러 돌파 직전이다. 같은 시각 국내 거래소에서는 빗썸 기준 1억 3830만 원 선에 거래됐다. 비트코인은 2017년 11월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한 후 7년 만에 10배가 뛰어 10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
비트코인이 이날 10만 달러 문턱까지 치고 올라온 가장 큰 이유는 개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자진 사퇴 발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겐슬러 위원장은 가상자산에 대해 보수적이고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겐슬러 위원장 해임 의사를 밝혔고 결국 그는 21일(현지 시간) “내년 1월 20일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밝혔다.
겐슬러의 자리는 친가상자산론자로 채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SEC의 인식을 비판했던 댄 갤러거 로빈후드 최고법률책임자, ‘크립토 대디’로 불리는 크리스 지안카를로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 ‘크립토맘’ 헤스트 피어스 현 SEC 위원 등이 후보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도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CNN은 이날 트럼프 당선인이 지분 53%를 소유한 트럼프 미디어가 이번 주초 당국에 ‘트루스파이(TruthFi)’라는 상표 출원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미디어는 트루스파이가 가상자산 결제 처리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달 18일에는 트럼프 미디어가 가상자산 거래소 ‘백트(Bakkt)’ 인수를 위해 협상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정책을 이용해 사업을 한다는 이해관계 논란이 일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가상자산 친화적 정책 추진에 진심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투자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입지가 탄탄해진 점도 상승세의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미 정부가 향후 5년간 총 100만 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이를 최소 20년간 보유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공화당이 발의한 후 가치 저장 수단이자 위험 헤지 수단,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산가치로 볼 때 금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비트코인이 45% 오를 동안 금은 3% 하락했다. 이에 대해 금 기반 가상자산인 디나르(Deenar)를 만든 마루푸 유수포프는 “비트코인이 대안 자산으로 금의 위치를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미국 가상자산 전문 매체 ‘더블록’에 전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코스피·코스닥 등 증시가 힘을 못 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20일 기준 49조 8128억 원을 기록해 50조 원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59조 4948억 원 대비 10조 원가량 급감한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증시 자체를 떠나면서 거래 대금도 줄고 있다. 전날 유가증권시장의 거래 대금은 8조 3564억 원으로 20일(7조 8201억 원) 대비 소폭 올랐지만 연중 최고치(19조 1359억 원, 6월 13일)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편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0.61포인트(0.83%) 오른 2501.24에 거래를 마쳐 8거래일 만에 2500선을 회복했다. 이날 지수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끌어올렸다. 개인들이 5344억 원어치를 던진 반면 외인과 기관은 각각 1166억 원, 3226억 원을 순매수했다. 특히 외인은 이달 7일 이후 11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전환했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분기별 실적 증가율을 보면 내년 1분기 저점 이후 개선되는 방향”이라며 “미국 관세 정책이 변수로 작용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얼마나 실적을 내는지에 따라 코스피지수의 흐름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