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의 꽃인 내년도 예산 심의가 시작됐다. 당파적 이익에 급급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국정감사를 보면서 털끝 만한 기대도 하기 어렵다는 것은 예상한 바다. 그래도 작금의 재정 상황이 하도 엄중해 적어도 예산 심의 과정 만큼은 생산적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비록 일부 대기업의 선전으로 수출이 회복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지속되고 있어 저소득층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특히 가계·기업·정부의 부채를 모두 합친 국가부채는 6000조 원을 넘어섰고 2023년 말 기준 국가채무(정부부채)는 1126조 7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4%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 약 56조 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024년에도 약 30조 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돼 긴축 예산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미래 성장동력이 될 필수 분야까지 줄일 수는 없으니 불요불급한 예산은 과감히 줄여 조금이라도 재정적자를 줄이고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여야 정치권은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방탄의 공방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도 민생에 직결되는 677조 원 규모의 예산 심의엔 관심도 없다. 여당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전액 삭감한 검찰 특수활동비와 특정 업무 경비의 복구를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가 편성하지도 않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1조~2조 원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여야의 공방이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나.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민항기의 일반석을 타고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11시간 넘게 이동하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의 모습이 보도됐다. 멕시코 대통령이 민항기, 그것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2월 당시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방 방문을 위해 수행원, 기자들과 함께 이코노미석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대통령이 일반석을 타고 내림으로써 다른 승객들이 불편을 느낄 수 있고 경호의 문제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재정이 열악한 국가의 대통령이 스스로 일반석을 이용할 정도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가. 국장급 이상 공무원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고 장관급은 1등석을 탄다. 물론 우리가 꼭 멕시코를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적자가 급증하고 정부부채는 물론 가계부채도 1914조 원에 이르러 ‘부채 공화국’이 돼가는 시기에 정부의 예산 절감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관행이 된 여러 제도를 돌아보고 뜯어고쳐 획기적으로 예산을 줄여보자. 국민 아이디어를 상시적으로 모집하고 집단지성을 활용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자. 있을 때 아껴야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이번 정기국회의 예산 심의는 건전 재정을 회복하기 위한 첫 단추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