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과의 전쟁’ 속전속결만이 능사?[경기톡톡]

도로 직선화·대형 개발공사에 로드킬 최근 5년 새 3배 이상 급증
대다수 지자체, 처리 업체 선정 서류상으로는 ‘안전’ 실제로는 ‘처리 속도’
‘빨리빨리 보단 안전’…작업 환경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대두

지난 20일 용인시 처인구 신중부대로에서 로드킬 사체 처리업체 달달스마일의 유정현 총괄이 고양이 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지난 20일 오후 3시께 용인시 처인구 신중부대로 양지방향 갓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었다. 검은 털과 흰털이 반씩 섞인, 흔히 ‘까치냥(까치 고양이)’으로 불리는 전형적인 한국 야생고양이었다. 대형 트럭이 지나칠 때 일어난 바람에 털이 나부꼈다. 입가에 흥건한 피만 아니었다면 얼핏 낮잠을 자는 듯했다. 현장에 도착한 로드킬(동물 찻길 사고) 사체 처리업체 달달스마일의 유정현(47) 총괄은 사체를 촬영한 뒤 곧바로 검은 비닐 봉투에 담았다. 최근 달달스마일 일원이 된 장기현(37) 사원이 10m 정도 앞에서 경광봉을 휘저으며 주행하는 차량에게 긴급 작업 중임을 알렸다. 사체를 수습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약 5분. 그 짧은 시간에 수십 대의 자동차들이 두 사람 옆을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유 총괄과 장 사원은 5분 뒤 명지대학교 사거리 쪽에서 고양이 사체를 하나 더 수습했다. 4차선 도로 한 가운데 사체가 놓여있는 바람에 방금 전보다 처리하는데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유 총괄은 사체들을 트럭에 싣고 시청 인근 폐기물 처리장으로 향했다. 2톤 정도 용량의 냉동 컨테이너 문을 열어 사체를 담은 비닐봉투를 밀어 넣었다. 냉동 컨테이너에는 로드킬 사체를 담은 봉투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유 총괄은 “로드킬은 고양이가 제일 많다. 절반이 야생고양이라고 보면 된다”며 “고라니가 그 다음으로 30% 정도, 개가 10%마리 정도로 생각보다 적다. 나머지는 조류, 너구리, 족제비, 청설모인데 모두 한 자릿수”이라고 설명했다.


유 총괄은 “작년에 처인구에서만 로드킬 수거가 약 1000건이었는데, 올해는 약 30% 정도 늘어났다”며 “야생동물 이동 특성 상 계절적 요인도 있을 것이고,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로 인해 차량 운행이 많아진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킬 신고는 평일과 휴일,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안전상 이유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지만 업체 사정 상 가용인원이 부족하다. 이날도 오전 5시께 처인구 이동면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구청 당직실 연락을 받고 출동했는데 사람이 없어 회사 대표가 직접 차를 몰고 가 수거를 해야 했다. 위치 등을 잘못 알려줘 허탕을 치는 경우도 10건 당 1건은 된다고 한다.



지난 20일 용인시 처인구 명지대학교 사거리에서 로드킬 사체 처리업체 달달스마일의 유정현 총괄이 고양이 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3년 째 평택시 로드킬 사체 처리를 위탁 받아 일하고 있는 FR에너지 임성재(48) 반장은 “일 평균 5건, 연간으로 따지면 1500건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며 “평택 경우는 곡창지대인데 공사장이 많다 보니 고라니가 많이 로드킬 당한다”고 말했다.


임 반장이 경험한 최악의 경험은 치명상을 입은 동물이 살아 발버둥 칠 때다. 죽은 사체도 위험하지만 도로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야생동물은 폭발시간을 알 수 없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동물의 습성을 잘 아는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연락하면 위험도를 일부 줄일 수 있겠지만 다급한 현장상황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임 반장은 또한 “비위가 좋은 사람은 잘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똑 같은 처참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밥도 잘 못 먹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끔찍한 장면이…심하게 훼손되고 냄새도 많이 난다.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힘은 들지만 로드킬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시민들을 볼 때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임 반장은 “막상 현장에 도착했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체를 치우는 경우도 많다”며 “어떤 때는 이불까지 덮어주고 간다. 꽃을 놔두는 경우도 있다. 감동적이다. 다만 차들이 다니는 위험한 도로에서는 섣불리 나섰다가는 2차 사고가 우려되니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과 평택에서만 로드킬이 유독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국립생태원의 로드킬 정보시스템 등을 보면 2019년 2만1397건이던 신고 건수는 2023년 7만 9278건으로 급증했다. 최근 5년 동안 전국적으로 신고된 건수는 21만7032건이다. 같은 기간 경기도에서만 4만9184건이 발생했다. 생태 전문가들은 실제 신고되지 않은 파충류, 조류 등의 수를 감안하면 이보다 3~4배 로드킬이 더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야생동물의 이동을 가로막는 도로의 직선화, 서식지 인근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개발공사, 차량과속 등이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손꼽힌다.



지난 20일 용인시청 인근 폐기물 처리장에 설치된 냉동 컨테이너에 로드킬 사체를 담은 봉투들이 가득 쌓여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로드킬 사체 수거는 오랫동안 구·군청 환경과나 도로과 공무직들이 담당했다. 험한 일이어서 ‘도로 위 전쟁’으로 불렸다.


하지만 쉼 없이 쏟아지는 로드킬 민원과 끔찍한 사체 처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면서 때문에 최근 수년 새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자체별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용인, 평택 등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는 연 1억 원 안팎의 계약을 맺고 로드킬 업무를 민간업체에 전담시켜 비교적 원활히 업무를 수행 중이다. 하지만 경기도 내 대다수 지자체는 입찰을 통해 3000~5000만원대에서 관할구역 로드킬 처리 업무를 도맡게 하고 있다. 위험도가 만만치 않은데다 작업 중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드킬 업체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공공기관이 업체 선정 과정에서 서류상으로는 안전장비 구비 등을 중시하지만 실제로는 ‘처리 속도’를 우선시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민원 독촉 때문에 다그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대부분 차도 위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작정 서두르다가는 제2의 사고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팀장은 “(동물자유연대는)협조요청을 해오면 경찰에게 통제 요청을 하고 협업해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지만 대부분 민간업체에서는 안전메뉴얼도 구체적이지 않고, 작업자들의 보험 등 고충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 팀장은 “사람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작업자)에게도 위험한 환경이 됐다”며 “무엇보다 지자체의 재촉 등의 문제가 있다. 이제는 ‘빨리빨리보다는 안전하게’가 필요하다. 용역을 준 공공기관에서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데 예산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