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 인간에게 필요한 땅
누군가가 나에게 검은 옷을 덧입혔다. 유리 창문 안쪽에서 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동그란 눈이 안면이 있었다.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어머니께 나의 도착을 알리는 듯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기 전에, 나는 옆의 좁은 문으로 스며 들어갔다. 나를 보자 사람들이 주르르 자리를 비켰다. 누워있는 이는 분명 아버지였다. 두 다리가 꼼짝없이 포박당해서 묶인 것이 여느 때와 달랐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 미국에 사는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로 출국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평소 잘난 척하는 여동생이 저렇게 눈이 뭉개질 정도로 울은 모습이 생경했다. 나를 보자마자 몸이 꼿꼿해진 여동생은 칼날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내비쳤다가 숨겼다. 어린 조카 미미가 그 곁에 서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6살 어린 아이에게 주검을 보여줄 잔인한 어른이 우리 집안에는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키 작은 남자 직원이 어머니께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기간에도 어머니는 수없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했을 것이다.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 고통스러운 단어들을 뱉어내는 쇼를 펼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떤 마지막 언어가 인간의 관을 장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내 생각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시간에 아파트에서 쓰레기처럼 뒹굴었던 장남의 말이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 아들이 왔어요. 당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아들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 하나님 곁에서 곧 만나요.”
어머니의 짧은 두 마디에 내 몸이 휘청 뒤집혔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멀쩡했다. 장례식장 직원은 상주인 나에게도 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욕설이 튀어나올까 봐 입을 앙다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딛고 섰던 땅이었고,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등받이였으며, 아버지의 후광만으로도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주는 사다리였으며, 그동안 내가 지녔던 것들의 보증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듣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서서히 변했다. 아파트 관리실 소장조차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인터폰을 끊기 전에 들렸다. 나를 찾아내어 이곳으로 데려온 아버지의 새 기사인 이무진도,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여동생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도 지키지 못한 인간말종으로 나를 보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탓인지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설령, 말할 수 있다 해도 소리내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의 서열이 무너졌는지, 허락없이 내 차례를 무시하고 여동생이 아버지께 마지막 말을 조곤조곤 시작했다. 여동생은 잠들려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혹은 잠든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읊조림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염의 과정에 곱게 단장한 화장 아래로 검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최근 1주 동안 내가 세상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나보다 수백 배나 많이 가지고 있던 명예를 모두 내려놓았다.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당신의 품 안에서 지키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시간을 사셨다. 내가 대담장을 빠져나와 달아나던 시간에,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겪고 계셨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프랑스 작가가 인간은 죽음의 종이라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딴생각하면서 무심코 올라온 내 표정을 미미에게 들켰다. 외삼촌의 얼굴을 어린 조카까지 외면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조문은 수없이 갔지만, 입관식에 참여하기는 처음이었다. 문학작품 속의 관이 실제 삶에서 드러난 생경한 모습에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가 떠오른 것은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이 바흠이었다. 그는 욕심 많은 농부였고 큰 땅을 가진 대지주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크고 싼 땅을 살 수 있는 바시키르 마을로 간다. 바시키르 촌장은 1000루블을 내면, 하루에 걸어서 갔다 온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가 사라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며, 돌아오지 못하면 땅도 돈도 돌려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바흠은 종일 달음박질로 땅을 계속 넓혀나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을수록 욕심은 커졌다. 땅을 더 얻기 위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아버지의 얼굴로 몸을 수그린 여동생이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나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여동생이 아버지의 얼굴에서 고개를 들었다. 바흠은 드디어 굳은 결심으로 방향을 틀어 출발점을 향해 다시 달렸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흠은 숨이 막혀 심장이 터질듯했지만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에, 바흠은 출발점에 다행히 도착했다.
여동생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미미가 서슴없이 나섰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도 몸 전체에 빛을 덧입은 어린 천사처럼 환하게 보였다. 미미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할아버지 앞으로 나아갔다. 어른들은 아이의 순진무구하고 자발적인 행동을 지켜보았다. 미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그런데 미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 내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참관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이곳은 여태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없었다. 슬픔은 삭제된 듯이 보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 상황을 충격없이 받아들이는 듯했고, 나만 빼고 다른 가족 친지들도 곧 하나님 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담담하게 했다. 그런데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소리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줄줄 눈물을 쏟았다. 평소 떼를 쓰며 울던 아이가 진정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지 온몸으로 슬픔을 견뎠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가식처럼 한결같이 담담하던 표정들이 저마다 달리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미미는 울음소리를 참기 위해 더욱 작은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염을 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장내는 슬픔으로 일렁였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해가 지기 전에 바르키르 마을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바흠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만다. 그때 촌장이 바흠에게 한 말이 내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엄청난 땅을 차지했습니다. 관 하나를 묻을 만큼의 땅을 차지했으니!”
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서 나는 미몽에서 빠져나왔다. 다들 슬픔에 빠져 있다가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깨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버지가 대담에서 다룬 성경 구절을 들으시고 기뻐하셨다.”
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악마같은 말이 책에서 나온 것임을 어머니는 짐작했다. 이 무례한 아들의 표현을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한 구절로 해석해서 상황을 무마한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별로 당황하는 법이 없었고, 지혜롭고 명철했던 아버지도 어떤 때는 아이처럼 어머니를 의지했다. 그런데 남자 직원은 직업상 기필코 완수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위해 나의 마지막 말을 다시 부추겼다.
“입관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드디어 한 마디를 쏟아냈다.
“아버지가 가시는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관에 넣기 위해, 밑에 깔린 천을 남자들이 안쪽에서 잡아 올리고 여자들은 반대쪽에서 잡고만 있으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관 안으로 옮겨졌다. 작은 천들로 아버지의 얼굴까지 가려졌다. 하얀 생화들이 관 안으로 차례로 놓였다. 그때 참관실에서 처음 나를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알렸던 여자가 다가와 책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조가대에서 왔어요.”
관 위로 다시는 열리지 않을 뚜껑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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