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이기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출시된 전략형 상장지수펀드(ETF)가 줄줄이 사라지고 있다. 올들어 벌써 12개가 상장 폐지됐고 현재 남아있는 ETF들도 자금 유입이 저조한 탓에 없어질 공산이 큰 상황이다. 전략형 ETF는 변동 장세에서 기초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내기 위해 설계된 상품을 뜻한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 폐지된 42개 ETF 중 전략형 ETF는 총 12개로 전체의 약 30%에 해당한다. 현재 남아있는 전략형 ETF도 대다수가 순자산이 100억 원 미만인 데다 거래량도 저조해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다. ‘TIGER 모멘텀’과 ‘KODEX 최소변동성’ ETF는 지난 6월 순자산이 50억 원 미만으로 떨어지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다음 반기 말까지도 해당 사유가 계속되는 경우에는 해당 종목은 상장 폐지된다.
전략형 ETF는 크게 로우볼, 하이볼, 모멘텀 등 세 가지로 나뉜다. 로우볼 ETF는 상대적으로 주가 변동 폭이 작은 기업의 비중이 높아 하락장에서 유리하다. 반면 하이볼 ETF는 주가 변동 폭이 큰 기업 중심이라 상승장에서 초과 수익 달성에 낫다. 모멘텀의 경우 분기 혹은 월 단위로 주가 상승 폭이 큰 종목의 비중을 높이는 리밸런싱(재조정)을 거치며 하이볼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전략형 ETF가 국내 증시에서 업종 간 쏠림 현상이 심화하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올 국내 증시에서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산 등 수출 업종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연이은 수주 계약 체결에 성공한 데다 올해 1400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 수혜까지 입으며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고공행진했다.
반면 유통, 건설, 화학 업종 등은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중국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탓에 주가가 좀체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전략형보다는 일부 업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테마형 ETF가 더 인기를 끄는 추세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다 같이 오르고 다 같이 내리는 장세가 과거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시점에서는 테마형 ETF가 월등히 더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갈아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후 연령층 증가로 월 배당 수요가 커지며 커버드콜 같이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전략형 ETF 부진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미국 증시 호황도 악재로 꼽힌다. 과거 하락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은 종목들로 갈아타며 반등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미국 주식, 채권 등 다른 투자처가 많은 데다 수익률도 국내 증시보다 우수하다 보니 과거 대비 버틸 유인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전략형 ETF는 국내 주식을 기반으로 구성돼 있는데 해외 특히 미국 증시 대비 장기 수익률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저조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