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신화 속 용의 형상이지만 몸은 물고기다. 부릅뜬 눈으로 정면을 보고 있는데 몸통 옆에서는 지느러미가 팔딱인다. 용은 원래 물을 다스리는 동물이지만 물고기 몸을 한 이 ‘어룡(魚龍)’은 자신의 몸 모양의 그릇이 물과 관계 있고 사용자는 특수계층임을 분명히 해준다. 바로 권위와 위엄을 동시에 가진 국보 ‘청자 어룡모양 주전자’다.
음각, 양각, 투각, 상감 등 모든 장식기법을 망라해 제작한 상형청자의 대표작인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는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일괄 제작이 아닌, 꽃잎을 몸체에 붙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꽃잎은 균일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는 각각을 정교하게 찍어낸 결과다. 또 정신적 세계에 대한 추구나 신앙적 바람을 담아낸 의례용 상형청자와 예배존상도 흥미를 끈다. 모두 당시 성행한 도교와 불교 맥락에서 제작됐다.
고려 시대 사람들이 다양한 동물과 식물,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청자인 ‘상형청자(象形靑磁)’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6일부터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아름다운 비색 유약과 빼어난 조형성의 고려 상형청자를 조명하는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를 열기로 하고 앞서 25일 언론에 공개했다.
고려 상형청자의 주요 작품과 최신 발굴 자료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았다. 국보 11건, 보물 9건, 등록문화유산 1건을 포함해 국내 25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주요 기관에서 소장한 유물까지 총 274건을 소개한다. 모두 각양각색의 사람이 상황에 맞춰 사용하거나 감상한 것이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지난 2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형청자를 연구해 온 결실”이라며 “상형청자의 예술사적 중요성과 고려시대 완상(玩賞) 문화를 함께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상형’ 전통을 설명하며 시작된다. 서기 3∼6세기 무렵 신라와 가야에서 만든 다양한 상형 토기와 토우(土偶)를 통해 흙으로 특정한 형상을 빚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공예의 정수로 꼽히는 다양한 상형 청자를 모은 부분은 전시의 백미다. 은은한 비색 유약으로 상상 속 동물인 기린을 표현한 향로, 13세기 무신정권 당시 권력자였던 최항의 무덤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조롱박 모양 주전자 등 명품 청자를 보여준다.
원숭이가 석류에 매달린 모습이 돋보이는 청자 연적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고려 공예에서 인기 있는 소재인 원숭이를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고려 조정이 몽골 침략에 맞서고자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던 13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상은 인물을 표현한 대표적인 상형청자다.
또 고려 상형청자가 갖는 독자적 아름다움을 비교사적으로 설명한다. 고려 상형청자가 주로 만들어지던 12세기 작품과 함께 중국 북송 시기(960∼1127)에 왕실 자기를 생산했던 허난성 청량사 여요(汝窯) 출토품을 비교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상형청자의 내면도 다룬다. 박물관은 컴퓨터 단층촬영, 3차원 형상 데이터 분석 등 과학적 조사를 거쳐 밝혀낸 제작 기법을 다양한 영상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미술사학회와 내년 1월 17일 고려 상형청자를 주제로 학술대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그릇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형상을 아름답게 담아낸 상형청자를 통해 전통 미술과 문화를 한층 가깝게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