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유상증자에 중복 상장까지…'밸류업' 무색한 K증시

■밸류업 역행 상장사 속출
테라사이언스, 최대주주 변경 위해
주가 654원인데 139원에 3자 유증
韓 중복상장 비율 18%, 美 0.3% 압도
자사주 활용 지배구조 강화 사례도
HL홀딩스, 47만주 재단출연 철회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밸류업 흐름에 역행하는 기업도 끊이지 않고 있다. ‘쪼개기 상장’은 물론이고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유상증자를 시도하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 정부가 상법 개정안 반대 입장을 정한 만큼 일반 주주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 허가를 받은 렉라자의 원개발사인 오스코텍(039200)이 자회사 제노스코를 코스닥에 상장하기로 하자 소액주주들은 중복 상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오스코텍 측은 기업설명회를 열고 설득에 나섰으나 주주 연대는 제노스코 상장 철회를 요구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태다. 오스코텍 주주연대 관계자는 “제노스코 상장으로 자회사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하면 수급이 분산돼 오스코텍 주가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며 “제노스코 상장 결정도 불투명하게 진행됐다”고 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443060) 등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로 인한 중복 상장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IBK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중복 상장 비율은 18.43%에 이른다. 미국(0.35%), 중국(1.98%), 대만(3.18%), 일본(4.38%) 등 주요국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 상장사 A사가 다른 상장사 B사 지분을 보유할 경우 동일 기업가치가 두 번 계산되는 ‘더블 카운팅’이 발생해 A사 주가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다른 국가가 중복 상장을 제거하면서 주주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동안 한국만 거꾸로 늘어나는 추세다.




경영권 분쟁 중인 일부 기업에서는 최대주주를 변경하기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하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유압용 관이음쇠 제조사인 테라사이언스(073640)는 이달 7일 운영 자금 3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주당 발행 가액을 139원으로 정했다. 올해 3월 감사 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되기 전날 주가 654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유상증자는 지나친 지분율 희석을 막기 위해 기준 주가의 10% 이내로 할인할 수 있는데 거래 정지된 상태라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최대주주가 회사 경영 문제를 지적 중인 권순백(2.35%) 블루밍홀딩스 대표에서 지분 18.42%를 확보한 서진판지로 바뀔 예정이다. 이에 다른 소액주주들의 지분 가치도 함께 낮아지게 됐다.


HL그룹의 사업 지주사인 HL홀딩스(060980)는 현물 보유 중인 자사주를 아직 설립되지 않은 비영리재단에 무상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가 논란 끝에 이를 철회했다. 이날 HL홀딩스는 “재단 설립 방식을 재검토하겠다”며 앞서 발표한 자사주 처분 결정에 대한 정정 공시를 냈다.


HL홀딩스는 11일 전체 발행주식의 4.76% 수준인 자사주 56만 720주 가운데 83.85%인 47만 193주를 비영리재단에 넘기기로 했다. 문제가 된 것은 회사가 2020~2021년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일부만 소각하고 대부분 재단에 넘기려 한 대목이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넘기면 의결권이 부활하는 만큼 지배주주 경영권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2대 주주(10.41%)인 VIP자산운용을 비롯한 주주 반발이 일었고 결국 HL홀딩스는 당초 계획을 접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은 해외(증시)로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결국 기업은 한국에 남아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자꾸 증시가 신뢰를 잃고 있어 문제”라며 “국내 증시가 조롱거리가 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기업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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