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초격차 경영의 상징으로 통했던 경영진단실을 신설한다. 2017년 2월 미래전략실이 공식 해체된 지 7년 만이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 등에서 경쟁력 지체 현상을 겪고 있는 삼성이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는 사장급 조직인 경영진단실을 신설해 최윤호 삼성SDI 사장을 신임 실장으로 임명했다고 28일 밝혔다. 관계사 요청에 따라 경영과 조직 전반을 진단하는 한편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 컨설팅 조직이라는 게 경영진단실에 대한 삼성 측의 공식 설명이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미래전략실 해체로 사라졌던 ‘경영진단팀’이 다시 부활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순히 컨설팅을 넘어 계열사 전반에 대한 감사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의미다. 최윤호 사장이 과거 미전실 전략1팀(전자 계열사 담당)과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최윤호 사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 등을 거친 대표적 전략통이다.
과거 삼성에서 경영진단팀은 ‘저승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단순히 임직원들의 부정을 잡아내는 감사를 넘어 사업 프로젝트와 조직 운영 상황 등을 촘촘히 짚어 문제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출신의 한 전직 임원은 “계열사마다 별도의 경영진단팀을 두고는 있지만 미전실 진단팀이 한 번 뜨면 최고경영자(CEO)가 바뀐다든지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든지 하는 강력한 후폭풍이 몰아닥쳤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감사 기능과 더불어 조직 전체의 ‘군기’를 잡는 역할도 같이 했다는 뜻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이나 박학규 사업지원TF 사장 등 또한 모두 경영진단팀장을 지낸 인물들이다.
물론 삼성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TF 역시 사안에 따라 팀을 꾸려 경영진단을 실시하기는 했지만 과거 그룹 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 때처럼 산하에 상시 조직을 두지는 못해 강력한 감사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삼성SDI 대표이사 자리에는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내정됐다. 최주선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을 거쳐 2002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2020년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 능력을 인정받았다. 기술에 해박하면서도 온화한 리더십으로 부하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SDI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서 성장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최주선 사장이 경영 정상화 특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이청 중소형디스플레이 사업부장(부사장)이 승진해 자리를 이어받게 됐다. 이청 사장은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액정표시장치(LCD)부터 OLED까지 개발과 공정을 두루 경험한 기술통으로 평가된다. 특히 회사 핵심인 중소형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개발실장과 사업부장을 연이어 맡아 차기 CEO 후보로 지목돼왔다.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LCD에 이어 OLED, 폴더블 디스플레이로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어 이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는 게 이청 사장의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삼성SDS는 이준희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날 내정했다. 이준희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보기술(IT) 및 통신 기술 전문가다. 2006년 삼성전자에 합류해 무선사업부 기술전략팀장과 네트워크사업부 개발팀장 및 전략마케팅팀장 등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서 보여준 기술혁신과 세계 최초 5세대(5G) 통신망 상용화 등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시대 삼성SDS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