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을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상설 특검 규칙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상설 특검 후보추천위에 여당이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꿔 ‘야당 입맛에 맞는’ 특검을 활용해 김 여사 의혹을 수사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야당은 개별 검사들에 대한 탄핵도 예고하는 등 이재명 대표의 위증 교사 1심 무죄 판결 후 정부와 검찰의 ‘힘빼기’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과 이미 폐기된 바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도 단독으로 처리하며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등 야당은 28일 오후 본회의에서 상설 특검 후보 추천 규칙 개정안을 179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모두 반대했지만 과반을 차지한 야당 의석 만으로 무난히 가결됐다. 야당이 처리한 개정안은 대통령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수사의 경우 총 7명으로 이뤄지는 상설 특검 후보추천위 구성에서 여당 추천 몫 2명을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배제된 여당의 추천권 2개는 의석수가 많은 비교섭단체 2개가 나눠 가지도록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고 나머지 2명은 그다음으로 소속 의원 수가 많은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하게 된다.
야당은 김 여사 의혹을 공정하게 수사하기 위해 여당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법안 의결에 앞서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게이트, 공천 개입 의혹 등 연일 쏟아지는 윤 대통령과 일가족의 비위 의혹들로 국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수사기관들은 ‘봐주기 수사’ ‘늑장 수사’로 일관한다”며 “이번 개정안은 이해충돌 상황을 방지하고자 했던 일관된 특검 추천 방식”이라고 정당성을 역설했다.
반면 여당은 “민주당 입맛대로 한 꼼수 개정안”이라고 반발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특검이 언제 발동할지, 무엇을 수사할지 민주당이 다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민주당 산하에 검찰청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며 “이 대표 방탄하겠다고 정치적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민주당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은 야당의 상설 특검 추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상설 특검 규칙 개정안 통과를 시작으로 야당의 ‘정부·검찰 압박’ 시도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다음 달 10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결과가 야당의 상설 특검 전략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특검법 재표결 진행 상황을 보며 상설 특검 수사 요구안 처리 시기를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특검법은 국회로 돌아온 상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서 ‘당원 게시판’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만큼 여당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만약 이탈표가 8표에 미치지 못해 재의결에서도 부결되면 야당은 상설 특검 추진에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상설 특검 수사 대상은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상설 특검은 별도 특검법 제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선 ‘검사 탄핵안’을 보고한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불기소 처분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이 대상이다. 이어 4일에 탄핵안을 표결 처리할 방침이다. 전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사건을 수사한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와 엄희준 인천지검부천지청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탄핵소추안 청문회는 다음 달 11일 열린다.
상설 특검 개정안 외에도 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거대 의석을 등에 업고 일부 쟁점 법안들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중에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야당은 정부 여당이 예산안 자동 부의를 염두에 두고 세법 심사 과정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며 이번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정안 통과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법률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윤 대통령에)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동행명령 대상 증인의 범위를 확대하고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거부할 수 없게 한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야당 주도로 이날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에 더해 야당은 ‘농업4법(양곡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도 일방적으로 가결시켰다. 쌀값이 폭락할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표결을 거쳐 폐기된 바 있다.
한편 여야는 합의된 일부 민생 법안들도 통과시켰다. 디지털 성범죄로 취득한 범죄 수익을 몰수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각급법원법 개정안, 채무자회생법 개정안 등이다.
총선 경선 여론 조작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영대 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197표, 기권 5표로 부결됐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