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된대” 강남병원 줄서더니…알츠하이머 신약 마침내 국내 상륙[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한국에자이,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 출시
논란 많았던 ‘아두헬름’보다 진보된 신약 평가
2주 한 번 투여…연 2000~3000만원 전망

한국에자이 ‘레켐비주’ 제품 사진. 사진 제공=한국에자이


“전화도 안 받아. 직접 가야 하는데 대기줄이 장난 아니야.”


몇달 전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던 K가 그동안의 힘들었던 마음 고생을 털어놓았습니다. 제작년 이맘 때쯤 어머니가 치매 의심 소견으로 진단됐고 가족들과 함께 백방으로 치료법을 알아보던 중 ‘치매에 관한 일인자’라고 불리는 의사가 운영한다는 병원을 소개 받았다고요. 전화, 온라인 예약은 커녕 방문 예약을 잡기도 하늘에 별따기인데 대기 환자가 워낙 많아 8개월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작 첫 진료일에는 원장님과 대면하지도 못한 채 전문상담사와 만나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쯤에는 모두가 숙연해졌죠. 그렇게 몇 차례 추가 방문을 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 자가공명영상촬영(MRI) 검사를 받은 끝에 최종적으로 ‘치매 초기’ 진단을 받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아직 초기 단계여서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들었는데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와 백신 접종에 드는 비용이 3000만 원 상당인데 한 번 맞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한달에 1~2회씩 1~2년에 걸쳐 맞아야 하기 때문에 억대를 호가한다고요.


“치매 백신이라고? 어떤 약인데?” 명색이 의료계 출입 기자인 제가 모르는 백신이 나왔나 싶어 따져 물었더니 K가 말한 백신의 정체는 아두카누맙인 듯했습니다. 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개발해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을 받았던 ‘아두헬름(Aduhelm)’이죠.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알츠하이머 치매 정복이 과학계의 화두로 떠오른 만큼 아두헬름의 FDA 허가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가 ‘2021년 주목되는 10대 과학뉴스’ 중 하나로 아두헬름 허가를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히 치매 백신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에 결합해 인지기능 저하를 늦추는 일종의 항체약물일 뿐이죠. FDA 허가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개발사인 바이오젠은 2019년 3월 임상 3상에서 아두헬름의 유효성 입증에 실패해 개발을 중단했다가 같은해 10월 약물의 용량을 높여 임상 3상을 재개했죠. 이 두 번째 임상 3상에서 치매 환자의 인지능력 감소를 최대 22% 늦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약으로 진행한 2건의 3상 임상 결과가 다르게 나오자 FDA는 시판 이후 유효성과 안전성을 추가 확인하는 임상 4상을 전제로 조건부 허가를 내줬습니다. 그럼에도 한해 5만 6000달러에 달하는 약값에 효능 부족, 부작용 논란에 시달리다 시장에서 자진 퇴출되다시피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 신청이 이뤄졌는데 위해성과 유익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업체에서 자진 취하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개별 환자들이 해외에서 약을 도입하는 형태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었죠.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국에자이가 28일 아두헬름의 후속 약물 격인 알츠하이머 신약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를 국내 출시했거든요.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2개 이상 합쳐진 올리고머를 제거해 병의 진행과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단일클론항체로 아두헬름과 작용기전이 유사합니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상 임상 결과 투약 1년 6개월 시점에 병의 진행을 위약 대비 27% 지연시키는 것으로 확인돼 작년 7월 FDA 허가를 받았고 올해 5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습니다. 2주에 한 번씩 투약하는 정맥주사제로 국내 치료비는 연간 2000만~3000만 원 선에서 책정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워낙 신약 출시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다보니 일선 병원들도 도입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고 해요. 다음달 중순이면 몇몇 대형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주 1회 환자 스스로 투여할 수 있는 피하주사 제형도 개발돼 FDA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합니다. 치매 정복의 간절한 꿈에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기대해봅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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