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만 18조 매도…외국인,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팔았다

■韓증시 엑소더스 심화
경기둔화에 엔캐리 청산 우려까지
외인 이달도 4.3조 매도 '수급 최악'
코스피 1.95%↓…반도체 등 약세
전문가 "증안펀드로 증시부양 필요
통신·은행 등 경기방어주로 대응"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하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이 팔아치운 국내 주식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섰다. 깜짝 금리 인하에도 경기 침체 우려가 확대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통상 정책,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다른 자산에 투자) 청산 우려까지 재부각되며 외국인들이 앞다퉈 한국 시장을 등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도주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수급마저 최악의 국면으로 향하자 전문가들은 ‘증권시장안정펀드’를 비롯한 증시 안정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가 본격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하반기 들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8조 996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금융위기인 2008년 하반기 15조 9955억 원을 넘어선 규모다. 하반기로만 보면 올해 매도 규모는 2007년(24조 3747억 원)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다. 달러 강세가 이어진다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매도가 다음 달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도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8.76포인트(1.95%) 하락한 2455.91에 거래를 마치면서 6거래일 만에 또다시 2500 선 밑으로 내려왔다. 장중에는 2% 넘게 하락해 2450 선을 내주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도 16.20포인트(2.33%) 내린 678.19에 마감했다.


최근 증시 하락 배경은 여러 요인이 꼽힌다. 먼저 전날 한국은행이 예상을 깨고 두 차례 연속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 시장에서는 경기 둔화 신호로 해석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10월 산업생산과 소비·투자 지표가 5개월 만에 동반 감소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금리 인하에도 투심은 되레 위축됐다는 것이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도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도쿄도 지역의 신선식품을 제외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 오르며 시장 예상치(2.1%)를 웃돌자 일본 통화 당국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관세 부과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정책 기조 역시 수출 중심의 한국 기업에는 경영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내외 악재가 맞물리면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005930)(-2.34%), SK하이닉스(000660)(-0.74%)를 비롯한 반도체주와 LG에너지솔루션(373220)(-5.22%),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 -4.40%) 등 2차전지주, 자동차주인 현대차(005380)(-0.23%)와 기아(000270)(-2.21%)를 비롯해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다수가 약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수급 측면에서는 사실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7494억 원을 순매도하면서 이달에만 4조 3039억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9월(7조 9213억 원)과 10월(4조 7001억 원) 대비 매도 규모는 감소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팔 만큼 다 판 상황에서 추가 매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장을 끌고가는 주도주가 사라진 상황에서 주가가 싸다는 점 이외에는 기대할 만한 모멘텀도 없다. 실제 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는 569개사(63%)로 집계됐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현재 주가가 청산했을 때 가치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그나마 현 상황에서는 통신·소비재 등 경기방어주로 대응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여기에 실적 성장이 기대되는 조선주, 주주 환원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은행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증안펀드 등 증시 부양 카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증안펀드는 금융지주사와 금융회사, 증권 유관기관 등이 출자해 조성하는 펀드로 증시가 불안정할 때 주식을 사들여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투입된다.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안펀드가 조성돼 투입된 바 있다. 최근에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폭락장 때 10조 7600억 원 규모로 조성됐지만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증시가 반등하면서 실제 자금이 투입되지는 않았다. 업계에서는 증안펀드가 조성되기만 하더라도 당국의 개입 의지로 시장이 일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는 “증시의 수급이 너무 취약해졌고, 증시가 흔들리면 투자자들 심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증안펀드의 빠른 투입이 필요하다”며 “증시의 반등을 위해서는 반도체 업황 개선,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 해소 등 여러 요인이 해결돼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증안펀드로 단기적 방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증안펀드가 투입된다고 해서 큰 흐름을 반전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당국의 주가 방어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수급이 붕괴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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