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안면마비를) 극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처럼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찬 바람이 불 때면 증상이 재발하는 건 아닌지 겁부터 나는 걸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좋아질 수 있다고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건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30대 초반 남성 서경제(가명) 씨는 대표적인 안면마비질환인 벨마비와 6년 넘게 싸우고 있다. 비슷한 증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는 벨마비 투병기를 가감 없이 공유하는 '제로덱'이라는 닉네임의 블로거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몸에는 뇌와 신체의 각 부분 정보를 교환하는 역할을 하는 12쌍의 뇌신경이 존재한다. 그 중 안면부 근육운동과 미각, 타액 분비 등의 영역을 관장하는 7번 신경이 손상돼 발생하는 질환이 안면마비다. 안면마비는 크게 중추성 안면마비와 말초성 얼굴마비로 나뉜다. 안면신경이 뇌를 빠져나온 후에 이상이 생겨 마비가 나타나는 ‘말초성 얼굴마비’가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특히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대상포진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안면신경이 손상되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 안면신경이 뇌 속을 지나가는 경로에 이상이 생기는 ‘중추성 안면마비’는 5~10% 정도 되는데 대개 얼굴근육이 마비되는 것보다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중추성은 대개 걸음걸이가 갑자기 변하거나 한쪽 팔, 다리의 힘이 빠져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말이 어눌해지는 식의 증상이 함께 온다. 안면마비만 단독으로 왔다면 거의 말초성으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안면마비 치료의 골든타임은 48시간이다. 늦어도 72시간 이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후유증이나 영구 장애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최대한 빨리 병원을 내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2018년 3월경 갑자기 양쪽 눈을 감는 속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다행히 즉각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항바이러스제와 소염제만 몇가지 처방 받고 당일 퇴원 조치됐다. 가장 중요한 스테로이드 처방이 누락된 것이다. 서씨는 “당시 병원에서 어렸을 때 스테로이드를 먹고 몸에 털이 나는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말했었다”며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할 때도 있다”고 했다.
안면마비는 대부분 한쪽 얼굴에만 발생한다. 정상 쪽은 이마에 주름을 잡거나 눈을 감는 등의 움직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얼굴이 전반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마비된 쪽은 이마부터 입까지 주름을 잡을 수 없고 한쪽 입을 움직이기 어려워 양치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그 방향으로 침이나 음식물을 흘리기 쉽다. 웃을 때 마비가 온 쪽의 입꼬리가 올라가질 않아 비웃는 것처럼 보이거나 한쪽 눈이 잘 감기지 않아 눈이 뻑뻑하고 흐려 보일 수 있다. 그로 인해 시력이 점점 떨어져도 모를 수 있어 안구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 고막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리가 울리게 들리는 느낌이 날 수도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마비가 나타난 이후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셈이다. 서씨는 “얼굴만 변한 것이 아니라 성격, 인간관계, 미래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안면마비 환자들은 반쪽짜리 세상을 사는 것과도 같다”고 토로했다.
한의원·한방병원부터 이름난 대학병원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던 서씨는 김진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와의 만남 이후 희망을 찾았다. 김 교수는 급성기부터 만성기까지 안면마비의 모든 과정을 다룰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안면마비 후유증을 치료하는 ‘선택적 안면신경차단술’이 가능한 의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부터 수술적 치료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서씨 역시 보툴리늄톡신 주사, 도수치료 등을 진행하다가 회복이 더뎌 2019년께 아랫입술 내림근 절제술을 받았고 2년쯤 지나 선택적 안면신경 차단술을 받았다. 흔히 보톡스라고 불리는 보툴리눔톡신 주사는 마비가 온 쪽 얼굴 근육의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안면신경 재생을 자극한다. 증상 발생으로부터 4주 이내에 큰 호전이 없을 때 소량의 보툴리눔톡신을 정상 쪽 얼굴 여러 군데 나눠 주사하면 얼굴 비대칭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성기 이후 도수치료 같은 안면 재활치료를 꾸준히 시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 데도 방법을 몰라 반쪽짜리 세상에 갇혀있는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안면마비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2016년 7만 8320명에서 2022년 9만 3053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서씨는 “보톡스나 도수치료의 경우 미용 목적의 시술이란 인식이 짙다보니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하는 사례도 많다”며 “저와 비슷한 환자들이 광고성 게시물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