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이였을 때 ‘두 세계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 글을 읽었다면 많은 위안을 받았을 것 같아요.”
그림책 ‘용을 찾아서’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 칼데콧상 영예상을 수상한 차호윤 그림책 작가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겪어온 두 나라의 정체성 문제로 인한 내적 갈등을 그림책을 만들면서 풀어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차 작가는 한국에서 초중생 시절 보낸 몇 년을 제외하고는 동양인이 거의 없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자랐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많다 보니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고 안으로 파고들면서 미술에 몰두하게 됐다"며 “어느 순간 한국적, 미국적인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것으로 나를 담아낼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설명했다.
올해 칼데콧상 수상을 안겨다 준 작품인 ‘용을 찾아서’는 두 가지 용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용을 찾아서'의 작화를 맡은 차 작가는 이야기를 집필한 중국계 미국인 줄리 렁 작가의 원고를 읽다가 울컥했다. 작품 속에서 한 할머니가 소년에게 “너는 두 세계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다. 서로 다른 두 용은 동양인과 서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암시한다. 그렇게 두 세계 간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평생의 숙제를 인식하게 됐다.
차 작가가 그림책에 꽂히게 된 건 어린 시절 잠들기 전 부모님이 읽어주던 ‘베드타임 스토리’에서 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전래동화가 대부분이었다. 차 작가는 "부모님이 책을 읽어주시던 그때부터 한국을 향한 애정과 관심이 생긴 것 같고, 제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이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다양해졌다. “어린 시절 ‘갯벌이 좋아요’를 읽었는데 미국 텍사스주에 살다보니 갯벌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며 “부모님 설명 속에 갯벌이 마법의 세계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교류를 통해 다양성을 가진 그림책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는 미국의 경우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동 도서의 다양성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동양 문화권의 12간지라는 개념을 다룬 책도 다양하다는 것. 동시에 한국 그림책만이 가진 기발한 소재 개발 능력도 높이 평가했다.
그가 현재 준비하는 작품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정원을 가꾸는 요정 이야기다. “한 요정이 정원을 열심히 가꾸다가 어느 순간 다른 정원이 눈에 들어와요. 그 정원이 너무 아름답고, 반면 내 정원은 초라해 보여요. 그때부터 그 요정이 밟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는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누구나 갖고 있는 내면의 비교의식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