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을 대표로 한 우크라이나 특사단을 접견했다. 특사단은 이 자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과 관련한 정보 공유와 함께 윤 대통령에게 한국의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무기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무기 지원을 요청했는지, 무기 구매 의사를 전달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확인된 이후 윤 대통령은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대원칙도 유연하게 검토해 나갈 수 있다”며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상황이 바뀌는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공언한 만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대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관계도 변수다. 러시아가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방어무기를 자국 군대를 겨냥한 ‘살상 무기’로 간주하고 외교적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종전 이후 한·러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양국 관계의 ‘레드 라인’으로 설정하고 여러 차례 협박성 경고를 보냈다. 알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산 무기가 러시아 시민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면 양국 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한국이 깨달아야 한다”고 겁박했다.
사실 국내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유지, 국가안보 등을 근거로 무기 수출(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출이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가 국외로 무기를 수출하거나 거래를 하려면 방위사업청장에게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위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제평화·안전유지 및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거나 전쟁·테러 등의 긴급한 국제 정세 변화가 있을 경우 △방산물자 및 국방과학기술의 수출로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는 경우 등에는 방산물자(무기)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하는데 제한되는 것은 여기에 해당된다.
또 다른 근거로 대외무역법이 있다. 이 법에 근거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중 ‘허가의 일반원칙’에서 “전략물자 등에 대한 허가는 해당 물품이 평화적 목적에 사용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이 원칙에 저촉돼 무기 수출(지원)이 제한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 28일(현지 시간) 유럽의회가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을 규탄하며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우회 촉구했다. 유럽의회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본회의에서 채택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안에서 EU 및 회원국들을 향해 “우크라이나 방어작전에 상당한 군사적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입장 선회를 요청(seek)할 것을 촉구한다”고 명시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결의안으로 정부로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각 국과 외교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국내법에 따라 국제평화와 국가안보를 고려해 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판매(지원)하면 안되는 것일까.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판매하지 않다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한국은 가자 전쟁 발발 이후에 이스라엘에 계속해 무기를 수출해왔다.
유엔 컴트레이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가자 전쟁 발발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계속 무기를 수출해왔다. 유엔이 공개하는 국제무역 데이터베이스인 유엔 컴트레이트(UN Comtrade)에 따르면 가자 전쟁이 일어난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1년간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한 나라를 집계한 결과 미국이 압도적 1위, 한국은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소 90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이 자료는 이스라엘이 유엔 통계국에 제공한 데이터로 자국이 무기를 수입한 나라와 수입 규모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 지구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되고 발생하고 있다. 확인된 사망자만 4만 3000여 명에 이른다. 국제 사회와 여러 해외 매체는 이를 제노사이드(인종·종교 등이 배경에 깔린 집단 학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1월 21일(현지 시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 혐의 등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ICC는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ICC는 성명에서 “재판부가 2023년 10월 8일부터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날인 2024년 5월 20일까지 저질러진 반인도주의 범죄와 전쟁 범죄로 네타냐후와 갈란트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4월에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 중단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9월 열린 유엔 총회에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불법”이라며 신속한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에 무기, 군수품 등 관련 장비를 제공하거나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겼다.
이 같은 국제적 흐름에 한국은 이스라엘에 계속 살상무기를 수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국제사회의 입장과 결정사항을 존중하고 있으며 관계법령에 따라 관계기관과 협력해 개별 수출 허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답변 뿐이다.
한국이 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판매하고 있다는 논란을 의식한 듯 한국무역협회에서 검색 가능했던 관세청 제공 무기 수출입 데이터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유엔 컴트레이드에서 검색 가능했던 한국 제공 무기 수출입 데이터도 비공개로 바뀌었다. 이는 한국 데이터를 비공개 처리해 달라는 한국 관세청의 요청을 유엔이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청이 유엔 컴트레이드 측에 무기 수출입 데이터 비공개를 요청한 이유를 물었다. 관세청은 ‘안보상의 이유’와 ‘한국 무기를 수입하는 해외 업체의 영업비밀 유출 우려’ 때문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한국은 201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무기거래조약(ATT, Arms Trade Treaty)’ 가입국이다. 이 조약은 해당 무기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민간인 대상 공격 등과 같이 전쟁 범죄 및 국제 인도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무기 수출을 금지한다. 한국의 이스라엘 무기 수출은 무기거래조약(ATT)을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데도 지속해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의 무기수출(지원)은 미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외교 관계 때문에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